1960년 체코 프라하에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발표 준비를 하던 한 젊은 과학자가 식당 냅킨에 무엇인가를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있었다. 식사 전에 생각난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기 전에 정리한 것이다. 흡족한 표정의 젊은 과학자는 냅킨을 들고 발표장으로 들어갔다.

이날 열린 심포지엄 주제는 세포막의 이동이었다. 세포들이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설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전 세계 많은 과학자 앞에 젊은 과학자는 냅킨에 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세포막의 나트륨과 당의 동시 이동을 묘사한 냅킨
세포막의 나트륨과 당의 동시 이동을 묘사한 냅킨

세포는 얇은 기름과 같은 막으로 덮여 보호되고 있기에 물질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통로가 필요했다. 세포와 외부를 경계 짓는 막에는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가진 통로들이 여러 물질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젊은 과학자는 포도당 성분이 세포 내부로 들어올 때 나트륨과 함께 움직이는 통로가 존재한다는 개념을 발표했다. 한 개의 통로에는 한 가지 물질만 통과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당시에 두 가지 물질이 동시에 움직인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었다.

정말 세포막에 특정 부위가 나트륨 성분과 포도당을 동시에 운반하는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물을 확인하는 데 2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음식을 먹어서 몸속에 흡수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고대부터 상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의보감>에는 위에 음식이 들어가고 오장육부가 모두 위에서 기를 받는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에서 흡수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묘사돼 있다. 소장은 수분 일부를 흡수하는 것으로 기술돼 있는데, 위산에 의해서 분해된 물질들이 주로 흡수되는 공간이 소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해부학적 지식의 한계로 인한 오류로 보인다. 

서구도 중세까지 위에서 음식이 소화되고 흡수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등 4가지 체액이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 몸을 유지한다는 생각은 중세까지 서구 의학을 지배했다.  

현미경이 개발되고 세포 수준의 관찰이 가능해지면서 영양분이 우리 몸에 흡수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다. 아주 작은 물질들은 자연스럽게 세포막을 통해 흡수될 수 있지만, 전기적 성격을 띠는 물질이나 비교적 덩치가 큰 성분들은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부 물질은 분명 세포 내로 들어갔다. 대표적인 것이 세포의 힘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연료에 해당되는 포도당 성분이다. 포도당 성분뿐 아니라 나트륨도 중요했다. 그런데 세포막 통로 중 나트륨을 세포 밖으로 배출하는 곳은 발견되었는데, 내부로 유입되는 경로는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 크레인이 주장한 나트륨과 당이 동시에 이동되는 새로운 개념은 나트륨 이동의 궁금증을 해결했다. 여러 다른 물질도 한 곳에서 2개가 서로 교환되면서 이동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접근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었다. 이런 가설은 실제 임상에도 영향을 주었다. 콜레라를 포함한 설사를 동반한 전염병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1830년대 콜레라 환자의 대변을 분석한 결과, 과도한 염분과 수분이 배설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보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소금물을 혈관으로 주입하거나 마시게 했다. 그러나 짠 소금물을 직접 마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사병 치료를 위한 민간요법으로 옥수수, 참마, 쌀뜨물, 바나나 등 다양한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단지 치료 경험으로 전해 내려져 오던 것으로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동의보감>에 심한 설사는 대부분 죽는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구토와 설사가 심할 경우 음식 섭취를 조심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콜레라 같은 심한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염분인 나트륨 성분이 포도당과 함께 장내 세포로 흡수된다는 이론이 소개되면서 그동안 경험적 치료로 시도되던 수분 보충 방법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새롭게 확립되었다.

정확한 계측으로 염분과 포도당으로 만든 물을 마시게 했다. 1971년 방글라데시에서 대규모 콜레라가 발생했는데, 준비된 수액이 떨어지자 소금물과 포도당 수액을 제조해 마시게 했다. 그 결과 30% 넘던 사망률은 3.6%까지 떨어졌다. 

나트륨과 당이 동시에 이동하는 곳은 소장뿐 아니라 신장에서도 발견되었다. 신장에서 걸러진 당분은 소변으로 배출되지 않고 얇고 가는 긴 관을 통과하면서 몸으로 다시 회수해 몸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사과나무 뿌리껍질에서 추출된 플로리진이라는 성분은 당분의 재흡수를 막아서 소변으로 당이 빠져나가도록 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즉, 혈당이 높아서 당분이 많이 빠져나가는 경우 빠져나간 당분이 회수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혈당을 낮추어 준다. 반면, 정상 혈당이 유지되면 신장에서 통과되는 당분이 적기 때문에 배설량이 감소하는 것이었다.

저혈당 위험성은 낮으며 에너지원으로 활용되는 당분 배설이 촉진되기에 전체적인 칼로리를 줄여 체중 감소 효과를 나타내면서 혈당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과나무 뿌리껍질의 플로리진 성분 자체는 금방 분해되어 비활성화되는 단점이 있었기에 이를 개량한 새로운 물질이 개발되었다. 

이동훈
이동훈

음식이 소화돼 흡수되는 것은 매우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음식이 위를 거쳐서 전달된다는 묘사에서 멈추지 않고, 그 과정 하나하나 추적해 정확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더불어 치료법 개발에도 큰 기여를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

수백 년간 차근차근 하나씩 모르는 사실을 밝혀내려는 노력이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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