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의 무형문화재를 찾아서(3)-포곡상여놀이

선조들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세계관은 상여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 망자를 매장하는 장지까지 데리고 가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장례의식을 치렀고 상여(운구에 쓰이는 기구)는 그 어떤 것보다 화려하게 꾸몄다. 이는 저승으로 갈 때 호사스럽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장지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갔는데 이를 ‘상여소리’라고 한다. 상여소리는 각 지역마다 존재했으며 노래 가사와 자락 등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용인에도 마을마다 다른 상여소리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소리는 포곡상여놀이가 유일하다.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와 유운리 일대에서 행한 상여소리로 15세기 이백지 선생 장례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소리꾼 권순기(왼쪽)씨와 포곡민속보존회 강희봉 회장
선소리꾼 권순기(왼쪽)씨와 포곡민속보존회 강희봉 회장

당시 향토문화재위원회는 포곡상여놀이가 △토속성과 향토성이 짙고 경기도민속예술제에 출전해 예술성을 인정받은 점 △특징적으로 백암면에서 채록된 상여소리와 비교해 볼 때 ‘오호, 오호’ 로 받는 중간소리가 더 있어 지역적 차별성이 확인된 점 등 특징을 살려낸 것이 높이 평가됐다. 특히 젊은 세대 후계 양성에 어려움이 있는 만큼 향토민속으로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2018년 12월 용인시로부터 시 향토문화 3호로 인정받았다. 현재 포곡읍에서는 권순기씨가 유일하게 소리꾼으로 활동하며 상여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 유입할 수 있는 콘텐츠 개발 필요

권순기씨는 포곡상여놀이 공연을 할 때 마다 소리꾼으로 앞장서 특유의 성량을 자랑하며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사진 제공 권순기 소리꾼)
권순기씨는 포곡상여놀이 공연을 할 때 마다 소리꾼으로 앞장서 특유의 성량을 자랑하며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사진 제공 권순기 소리꾼)

포곡상여놀이는 상여가 출발할 때부터 우물 지나기, 앉은걸음 걷기, 징검다리 건너기 등 장지로 향하는 과정, 장지에서 하관 후 봉분을 만드는 회다지(장례 의식에서 하관을 마치고 관 주변에 흙을 넣고 다질 때) 과정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고 있다. 장례의식과 상여를 메고 운반하며 여기에 땅을 다지는 노동까지 더해져 의식요이면서도 노동요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상여소리는 긴소리, 중간소리, 자진소리, 회다지소리, 달구소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장례 의식에서 하관을 마치고 관 주변에 흙을 넣고 다질 때 부르는 노래인 회다지소리가 유명하며 1980년대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전승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상여놀이는 1980년대 이후 장례문화가 간소화됨에 따라 외면 받다가 2005년 경 이를 복원해 계승하자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김인선 포곡민속보존회 초대 회장과 포곡읍 새마을회를 중심으로 포곡민속보존회를 만들어 2007년까지 3년 동안 포은문화제 기간에 열린 상여놀이대회에 참가해 1위를 했다.

이때 동원된 인원이 40명이 넘은 대규모로 이 덕에 포은문화제 천장행렬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를 기점으로 포곡읍 주민들은 포곡상여놀이를 향토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준비했고 약 10여년의 노력 끝에 상여놀이의 차별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포곡민속보존회 2대 회장을 맡은 강희봉(61)씨는 “매장 문화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여서 상여를 꾸밀 일이 없어졌다. 주로 공연 위주로 하고 있다”면서 “여전히 상여놀이에 참여하고 함께 연습하는 분들은 적지 않은데 문제는 연세가 많다는 것이다. 젊은 층이 유입돼야 상여놀이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했다.

강 회장은 이어 “서유기를 보면 만화 드래곤볼로 발전하지 않았느냐. 그런 것처럼 상여놀이로 파생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우리 목표다. 상여놀이는 종교와도 관계없는 민족의 역사이자 이어나가야 할 문화다. 우리 선조들의 삶의 단면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상주 울리고 웃긴 천상 선소리꾼

권순기씨는 포곡상여놀이 공연을 할 때 마다 소리꾼으로 앞장서 특유의 성량을 자랑하며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사진 제공 권순기 소리꾼)
권순기씨는 포곡상여놀이 공연을 할 때 마다 소리꾼으로 앞장서 특유의 성량을 자랑하며 관객들 시선을 사로잡았다.(사진 제공 권순기 소리꾼)

상여놀이에서 소리꾼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 중요하다. 장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상여를 매고 무덤까지 가는 동안 노래를 불러야하기 때문에 암기력도 상당해야 한다. 또 상황에 맞게끔 가사를 바꾸거나 지어내야 할 순발력과 창의력도 수반돼야 한다.

40여년 동안 선소리꾼으로 활동하는 권순기(61)씨도 이에 해당된다. 탁 트인 목청과 듣기 좋은 음색 여기에 뛰어난 암기력 덕에 20대부터 선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렸을 때부터 상여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뛰고 좋았다는 그는 40년 넘는 세월을 선소리꾼으로 보내고 있다.

그는 “장례를 치르는 곳에 가서 망자의 삶을 보면 잘사는 사람이든 가난했던 사람이든 사는 과정은 다 비슷하더라”면서 “과거에는 염도 집에서 해주니까 죽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상여소리를 하면서 망자의 삶을 노랫말에 담아 읊었다. 발을 구르면서 박자를 맞추고 앞소리를 하면 함께 가는 사람이 후소리해주고 대화처럼 주고받는 방식으로 상여놀이를 한다”고 설명했다.

상주를 울고 웃기는 소리꾼이 상여 역을 잘하는 것이라는 권씨. 상주가 울면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상여소리를 했고 너무 처진다 싶으면 중간 중간 농담을 섞어 상주 기분을 풀어줬단다. 그렇게 선소리꾼으로 지낸지 40여년이 흘렀다.

권씨는 상여소리를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단다. 포곡읍에서 선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한 명뿐이라는 권씨.

“상여소리 가사를 들어보면 서민들 애환달래는 소리에요. 그 의미를 하나씩 알고 들으면 더 재미있는데 요새 쓰는 말이 아니어서 어렵죠. 그래도 구절을 이해하면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지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한번 쯤 들어보세요”

권순기씨는 긴소리부터 중간소리, 자진소리를 차례대로 들려줬다. 그의 소리는 구슬프면서 시원했다. 진심과 한 그리고 구슬픔이 더해진 그의 목소리 덕에 남은 이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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