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소년개발연구원이 2006년 ‘동북아 한·중·일 청소년의 역사인식 국가관 비교연구’란 여론조사를 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앞장서서 싸우겠느냐’는 물음에 가해자인 일본이 41%, 중국 14%인데 반해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10.2%였다. ‘외국으로 도망하겠냐’는 물음에는 일본이 1.7%, 중국 2.3%였는데, 한국은 10.4%나 되었다.

경술국치 후유증으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 있고 아직도 곳곳에는 일제의 상처가 남았는데 우리는 건망증에 걸려있다. 민족반역자가 잘 먹고 잘 산 전례가 있으니 다시 위기가 오면 나라를 먼저 배반하려고 다투지 않을까 몹시 우려된다.

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선생이 회고록에서 쓴 내용이다. 과연 위 통계가 2021년이라고 달라졌을까? 오히려 더 심각해졌지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일본은 도쿄올림픽 때 2차 대전시 대동아공영권의 상징 깃발인 욱일승천기를 버젓히 사용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독도를 임의대로 명칭한 ‘다케시마’로 표기하면서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은 자신들의 준비한 계략을 진행하고 이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도 충분히 자신들이 승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 되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나라와 함께 제소하여 판단을 받아보자고 제안 할 것이다. 과연 일본이 독도만을 우리에게 빼앗으려고 전쟁을 일으킬까? 아니다. 결국 그들의 속셈은 110년 전 같이 한반도 전체를 자신들이 집어 삼키고 한반도를 전초기지로 삼아 대륙 침탈할 것이고,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 세계를 삼키려고 할 것이다.

예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일부 역사학자가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연구 발표해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이제는 국민의 최후에 보류라고 자청하는 대한민국 법원의 현직 판사가 사상초유의 판결을 했다.

핵심 내용은 첫째,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인 원고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었으므로 청구 할 수 없다”라는 논리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하였다. 그러나 이전에 상급법원인 대법원에서 ‘한·일 국가 간의 배상청구는 어려울 수 있으나, 일본을 상대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는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런 취지로 파기환송한 일이 있다. 가해국인 일본의 재판소와 뜻있는 학자와 시민단체 역시 개인의 청구권은 존재한다고 하였다.

둘째,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탄조약이 국내법적으로 판단하여 불법이지만, 국제법으로는 불법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이미 1945년 9월 2일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도쿄만 미국 미주리호 선상에서 승전연합국은 일본을 상대로 항복문서에 서명받은 것이다. 불법임을 승전연합국과 일본이 항복문서를 통해 76년 전에 결론이 난 내용이다.

셋째, 위안부 문제, 강제 징병 및 노역 문제,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제소되어 만일 그 중 한 사건이라도 대한민국이 패소할 경우 국가적인 손해가 막대하다고 하였다. 오히려 일본은 위안부 문제, 강제 징병 및 노역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제소되는 것을 꺼리고 있고, 단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것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 때 세계가 일본을 주목할 지금 독도를 자신의 땅으로 표기한 것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인들은 “독도 문제에 대해 모르지만 무엇인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불과 100여년 전 우리민족에게 민족말살정책으로 식민사관을 심어준 것처럼, 세계인들을 상대로 풍부한 비자금을 무기삼아 왜곡된 역사와 정보를 심어 줄 것이다.

용인은 수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고장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빌미삼아 조만간 국지적으로 도발을 자행할 것이다. 이제 더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방력이 강해져 자신들이 승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인데 정작 이 땅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수 많은 젊은 청소년들은 앞 다퉈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다.

과연 이런 청소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결국 제대로 된 교육을 가르치지 못한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 더 크다.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 주고 조국이 소중한 것이고 목숨 바쳐 지킬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겨 온 국토가 수탈로 폐허가 되었고, 온 국민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때문에 필자에게는 증조부이신 김혁 장군을 포함하여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먼저 지금의 초·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최근 필자가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20년 만주무장독립전쟁의 대표적인 단체인 신민부, 정의부, 참의부에 대한 설명이다. 겨우 명칭과 관할 구역을 지도로 표시하는 것이 전부였다.

1920년대는 가장 치열한 무장독립전쟁의 시대이고, 특히 신민부는 청산리 대첩의 대표단체인 대한군정서(일명 북로군정서)가 전신이며, 신민부가 관할한 북만주 지역만도 지금의 남한 국토와 버금갔다. 삼권분립이 된 상태이고, 신민부 본부에서 상주하여 근무한 직원만 500명이 넘었다. 또한 설립한 민족학교만 100여개가 넘고, 신민부 산하 성동사관학교에서 졸업한 초급장교(현재 소위)만 530명이다. 외형만 살펴봐도 국내수복작전을 위해 한 나라를 세운 것이다.

신민부 자체에서 크고 작은 국내진공(進攻)이 진행되었으며, 심지어 1926년 6월 10일 순종 장례일을 기일로 총독부를 포함 한반도 전체를 일시에 진공작전을 계획할 정도였다. 결국 일제는 신민부 수뇌부를 체포하려고 육·해·공군을 동원하여 찾을 정도였다. 이런 내용은 당시 일본 외무성문서에는 독립군을 ;불령선인;이라고 칭하며 조사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시급하게 교과서를 증보해야 하는 이유다.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에는 각자 자신의 고장에서 기념할 만한 인물을 위해 각자 기념관을 설치한 상태이다. 이러한 관계로 이동 동선 등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으로 아이들에게 현장역사체험탐방 및 교육을 할 때 폭넓게 역사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독립을 위해 항쟁한 인물들을 통합한 ‘경기도 독립기념관’을 용인에 지을 것을 제안한다.

용인은 만주무장항쟁의 상징이며 최고지도자인 김혁 장군과 서간도 지역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가장 오랫동안 역임하신 여준 선생, 3대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오희수·오광선·오희옥 지사, 1905년 을사늑약 당시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순국하신 이한응, 민영환 열사의 고향이다. 그 외에도 지면상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이 땅 용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정립 애족애향 정신을 바로 세워 온 국민이 함께 선열들이 피 흘려 지켜낸 조국을 일본의 간악한 침략에서 수호해야 할 것이다. 지난날 일본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한말이 지금 진행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들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끼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끼의 말처럼 일본이 향후, 독도 영토문제를 빌미로 한반도와 대륙침략을 할 가능이 큰 이 시점에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키신 이 땅을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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