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 숲

마을 뒷산 길을 따라 걸었다. 벚꽃이 지고 나면 아까시 꽃이 피고 그 꽃이 지면 밤나무 꽃이 핀다. 지금은 아까시 꽃이 피는 향기로운 시기이다. 아까시 꽃 향이 은은하다. 곧 있으면 아까시나무에 벌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러면 늦는다. 아까시 꽃을 먹으려면 지금이 딱 좋은 때다. 마음이 맞는 이들을 모아 아침 일찍 꽃을 따러 뒷산에 올랐다. 15m가 넘는 큰 나무인 아까시나무는 꽃을 따는 것부터 힘들다. 하지만 꽃이 피는 키 작은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경사진 곳에 있어서 키가 커도 꽃을 딸 수 있는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동네 숲을 오랫동안 다녀본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꽃이 풍성해서 가지가 쳐진 아까시 꽃은 포도송이가 풍성하게 달린 것처럼 맛있어 보였다. 지금은 잎보다 꽃이 더 풍성하니 멀리서 좋은 향기와 함께 하얗게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아까시나무이다.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큰 나무이면서 이렇게 좋은 향과 큰 꽃을 보여주는 나무는 등나무와 함께 아까시나무가 으뜸이다. 숲에서 산나물을 뜯는 사람들처럼, 한 송이를 따면 옆 송이가 탐스럽게 보이고, 이 가지를 꺾으면 또 옆가지가 탐났다. 거의 나무 한 그루를 다 털 것처럼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먹방을 하는 유튜버들도 음식을 보면 이런 욕심이 생기는 것일까?

아까시나무와 꽃

아까시 꽃을 노리는 무리는 우리뿐만 아니었다. 여러 가지 애벌레와 곤충들이 꽃송이 안에서 그 향기에 취해 있었다. 우리 손에 들어온 꽃송이에서 곤충들이 더 놀랐을 테지만 우리도 무방비로 꽃에 취해 있다가 송충이를 보며 기겁했다. 왠지 초록색 애벌레와 송충이는 같이 취급하기 어렵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자란다는데 아까시 꽃에 왠 송충이? 다시 생각해보니 매미나방의 애벌레 같기도 하다. 몸에 털이 많이 나서 송충이처럼 보이는 애벌레는 아주 많으니 송충이가 그것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된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잘 알게 되면 사랑할 수 있다지만 송충이가 내 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긴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까시나무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오래된 참나무 숲보다 소나무 숲이나 숲 가장자리에 햇빛이 많이 드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번식력이 좋아 작은 나무들도 함께 잘 자란다. 뿌리가 얕게 뻗기 때문에 여름에 심한 태풍이 지나고 나면 숲에 뿌리가 뽑혀 넘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까시나무는 작은 뒷산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친근한 나무일 것이다.

아까시 꽃 튀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아까시 꽃이 한 보따리였다. 집에 가져오니 그 향기가 가득했다. 송충이 몇 마리를 잡아내고, 식초물에 헹구고 밀가루를 뿌리고, 아주 묽은 튀김가루 옷을 입혀 기름에 넣었다. 뜨거운 기름에 아까시 꽃이 하얗게 부풀어 오르자 마음도 함께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쉬운 일을 번거롭다며 하지 않았다니 후회됐다. 아까시 꽃에 여름 과일인 참외, 견과류, 녹차생크림케잌, 탄산수를 곁들이니 정말 근사한 브런치가 완성됐다. 아까시꽃 튀김은 처음이라며 먹어도 될까? 모두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튀겨진 모습에 한번,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에 한번,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쑥갓, 깻잎도 튀겨 먹으면 정말 맛 난다는 얘기, 다음에 아까시 꽃을 딸 때는 장갑에 장대를 준비해야겠다는 얘기,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얘기로 즐거움이 더해졌다. 날씨도 좋고, 입도 즐겁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이렇게 즐거운 데 마음껏 즐길 수 없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다음 아까시 꽃 튀김할 때에는 많은 지인이 함께 더 풍성한 잔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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