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날 특집]용인의 노동자를 만나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용인시민신문 자료사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거대자본이 없는 다수의 시민이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때문에 노동의 가치는 삶에 있어 가장 절대적이다. 매년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흔히 근로자의 날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용되는 공식 명칭은 노동절이다.

노동을 지우고 근로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차치하자. 그저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일하는 사람은 곧 노동자다. 안팎에서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에서부터 사회 초년생 자녀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정규직이 되지 못한 수많은 비정규직 역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노동자임에 틀림없다. 이에 용인에서 노동자의 삶을 사는 각 계층의 시민들을 만나 특례시민으로 삶을 앞둔 노동자의 일상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 주부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

◇나는 ‘가정주부’ 노동자다= 사회가 많이 변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성별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남편을 바깥양반이라고, 아내를 안사람이라 불렀다. 불평등이 여과 없는 호칭에서 알 수 있던 남성은 직장, 여성은 집안일을 주로 했다. 하지만 사회는 많이 변했다. 성별 역할에 제한은 크게 줄었다.

아직은 전업주부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지만 역할을 바꾼 가정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집안일을 전담하는 여성을 의미하는 전업주부란 용어도 폐기할 때가 온 것이다. 굳이 한글로 전업주부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부’짜는 상황에 따라 며느리부가 아닌 지아비부(夫)로 사용돼야 적절하다.

그간 집안일이란 노동은 당연한 희생이며, 바깥에서 이뤄지는 사회관계 속 노동과 비교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정주부는 직업 종으로 분류될 만큼 노동을 인정받고 있다.

수지구 죽전동에 거주하는 이미영(44)씨는 간호사로 근무하다 15년 전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됐다. 남편이 외벌이를 하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한명이 있다. 그는 전업주부로 삶에 만족하고 있다.

이미영씨는 “직장 일을 할 때와 전업주부로 생활하는 것을 굳이 비교한다면 가정일이 적성에 맞다. 스스로 만족하니 크게 어렵다는 생각은 없다”라며 “남편에게 굳이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각각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전업주부를 직업으로 여기고 있다.

여름철 물기 묻은 의자를 정리하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 /용인시민신문 자료사진

◇나는 ‘사회초년생’ 노동자다= 2020년 우리사회는 침울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쉼표가 찍힐 줄 알았던 사회는 일년 넘도록 아직 굵은 마침표가 찍혀 있는 곳이 많다. 취업생들 역시 그 피해권역에서 힘겨웠다.

난해 명지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유모(28)씨는 현재 알바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취준생이다. 정규직 자리를 잡기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어 둔 상태지만 현재로서는 단기근무가 직업이다.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일거리가 많아진 배달일도 함께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유씨. 그는 노동자란 단어가 다소 어색하단다.

“취업 준비를 한 것은 제법 오래됐는데 학생이란 호칭에 익숙해서인지 노동자라 불리는 것은 어색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안정적인 일을 평생 해야 하는데 그럴 때가 되면 노동자라 불리면 기분 좋을 것 같다. 무언가 인정받는 느낌이다”

사회초년생이 전부 나이 젊은 청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경남 거제에 거주하다 2019년 경기도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에 취업해 현재 용인에 살고 있는 서준희(50)씨. 그는 직장생활 2년차로 아직 새내기 직장인이다. 대학생 자녀 두명을 둔 서씨는 하루가 전국을 무대로 출장길에 오르지만 일할 수 있어 다행이란다.

서씨는 “20년 가까이 주부로 살다 거의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대학생 아이가 있으니 직장생활을 불가피했다. 아이를 다 키우다 보니 집안일이 많이 줄어 직장을 잡은데 어려움이 없었다”라며 “(나와)비슷한 연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 눈 팔 사이가 없다. 사회적으로는 노동자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모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흥구 한 아파트에서 재계약을 하지 못해 실직된 전 경비원들의 재고용 요구 시위. /용인시민신문 자료사진

◇나는 ‘은퇴를 앞둔’ 노동자다= 취재가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한통의 전화가 왔다. 올해 초 근무하던 아파트 단지에서 해고된 경비노동자다. 석달 가까이 전 근무지 주변에서 농성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복직은 묘연하다. 현재 상태로는 복직되지 않아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분위기다. 그는 사회가 규정한 정년퇴직 나이를 훌쩍 지났다. 그럼에도 그는 경비노동을 하면서 사회적 나이를 애써 외면해왔다.

박재호씨는 “옛날이면 손자녀와 함께 집에서 편히 시간을 보낼 나이다. 주변을 보면 연세가 있어도 노동하는 분들이 많다. 평생 일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사회는 우리 같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다. 이렇게 실직하게 되면 정말 어디 설 자리가 없다. 아직은 일을 해아 하고, 또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라고 말했다.

백암면 물류회사에 근무하는 이도웅(58)씨는 은퇴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하지만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힘들어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을 생각하면 은퇴 시점은 더 늦출 수밖에 없을 거란다.

이씨는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쯤에 퇴근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견디기 쉽지 않는 노동 강도에요. 곧 나이 환갑인데 더 버티기 힘들 듯해서 은퇴를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는 현실”이라며 “30년 가까이 노동자로 살면서 가족 건사할 수 있어 기분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노동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많다. 조금 더 일하고 푹 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래 ‘나는 외국인’ 노동자다= 지난해 12월 포천시 일동면 한 숙소용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국적 30대 여성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포천 일대는 한파특보가 내려진 상태라 동사로 봤지만 경찰 국과수는 병사로 판단했다. 이를 계기로 그간 관심 밖에 있던 이주 노동자 처우가 다시금 조명됐다.

지난해 용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고기복 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최장 집중호우로 용인에서 발생한 침수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숙소를 잃은 이주 노동자도 상당수란다.

고 대표는 “당시 침수 피해를 입은 수재민 중 절반 이상이 용인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라며 “그만큼 그들 일상생활은 만만치 않다”라고 설명했다.

용인에서 가방을 풀고 그간 각지에서 근무해온 노동자 수가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이후 확연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노동시장 한 축으로 자리한 이주노동자의 공백에 따른 여파는 이내 나왔다. 특히 농촌과 소상공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식당 등 상가 주변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갈동 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 출신 한 노동자의 말이다.

“돈 벌기 위해 한국(용인)에 왔고 1년 뒤에는 다시 귀국해야 한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너무 힘들다. 될 수 있다면 한국에서 더 긴 시간 있고 싶다”라며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면 용인에 살고 싶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맘에 들고 일할 수 있는 곳도 많은 것도 맘에 든다”

용인경전철 노조 활동을 알리는 현수막이 역사 주변에 붙어 있다.

◇용인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용인시 노동자 중 수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부문은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경우다. 앞서 언급한 일용직이나 가사 노동자 등은 수치에 잘 반영되지 않았다.

용인시가 공개하고 있는 연도별 사업체조사 현황을 기준으로 보면 용인시 사업체와 노동자 수는 2017년 전체 4만9600여 사업장에 31만4000여명이었다. 1년 뒤에는 사업체는 5만2700곳으로, 2019년에는 5만5800여곳으로 늘었다. 한해 평균 3000여곳이 신규로 늘었다. 이에 맞춰 노동자도 늘었다. 2018년에는 1년전과 비교해 2만3000여명이 늘었다. 2019년에는 증가세가 다소 주춤해 1만 3000여명이 늘었다. 당시 용인시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3명당 한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집 당 최소 1명 이상은 수치에 잡힌 노동자란 의미다.

지역별로 보면 사업체 수는 기흥구가 2019년 기준으로 2만900여곳으로 3개구 중 가장 많다. 뒤를 이어 처인구가 2만800여곳, 수지구는 1만400곳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용인에서 사업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처인구였지만 2019년 기흥구로 맨 앞자리를 넘겼다. 노동자 현황을 살펴보면 처인구는 2019년 기준 3년간 10만9900여명에서 12만2400명으로, 기흥구는 13만7900여명에서 15만2800여명으로 늘었다. 수지구는 이보다 크게 적어 6만6200명에서 7만5000여명 정도에 머문다.

사업체별 노동자수를 살펴보면 용인시 전체는 2017년 한 사업체당 근무 노동자는 평균 6.3명이던 것이, 2019년에는 6.29명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지역별로는 격차가 제법 있다. 전체적으로 노동시장을 이끄는 기흥구도 처인구와 함께 고용시장이 주춤해지는 경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처인구는 2017년 사업체별 5.95명 노동자가 근무하다 5.87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기흥구는 사업체별 근무 노동자가 3개구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오히려 고용된 노동자는 줄었다. 기흥구는 같은 기간 7.55명에서 7.31명을 보였다.

수지구는 유일하게 고용된 노동자가 늘었다. 이곳은 같은 기간 사업체별 근무 노동자가 평균 5.14명에서 5.39명으로 늘었다.

근무 규모로 보면 1~4명에 근무하는 사업장에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2019년 기준으로 10명 미만이 근무하는 사업장은 5만곳이 넘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총 13만4000여명으로 전체 대비 42%를 넘는다. 지역별로는 처인구는 전체 사업장 중 90% 이상이 10명 미만으로 이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전체 대비 40% 수준이다.

기흥구 역시 전체 사업장 대비 90%에 가까운 비율이 10명 미만이며, 이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4만9800여명으로 전체 대비 36%에 머문다. 수지구는 3개구 중 가장 편중이 심하다. 전체 사업장중 91.4%가 10명 미만이며 이곳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전체 대비 절반에 육박하는 48.7%다. 특히 수지구에는 500명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은 한곳뿐으로, 1580여명의 노동자가 여기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는 처인구 54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기흥구 2만4600명의 6%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반면, 용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활동은 상당히 미약한 수준으로 보인다. 용인시 사업체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용인에는 총 104개 노동조합이 있다. 여기에 소속된 노동자는 8200여명이다. 당시 용인시에는 4만9000여 사업장에서 31만여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전체 대비 3%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용인시 노동문화에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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