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와 높은 산에 다녀올 때면 항상 그 검은색 흙을 한두 봉지 챙겨서 내려오곤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눈이 시원하게 내리지 않아 겨울 가뭄이 계속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이미 예견된 겨울 가뭄이지만, 가뭄이 추위를 더 가중하는 효과를 내니 점점 추위가 무서워진다. 다행히 이번 겨울에는 눈이 내려주니 작은 눈도 너무나 감사하다. 필자 고향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여름엔 바다로, 겨울엔 눈을 찾아 강원도로 향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인 숲 길을 걸었다. 산책로에 떨어졌던 나뭇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잘게 부서져서 어떤 잎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 길 바로 옆에는 밟으면 푹푹 빠질 정도의 나뭇잎들이 쌓여있었다. 나뭇잎은 가을인 10월에서 11월에 대부분 떨어진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시기와 맞물린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잘게 부서져서 어떤 나뭇잎인지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

숲의 낙지와 낙엽 중 낙엽이 차지하는 비율은 80% 이상이다. 침엽수림이 많았던 시대에는 낙엽의 분해속도가 지금보다 느렸다. 소나무 잎은 신갈나무 잎보다 두껍고, 매끈한데다가 소나무 숲 토양은 산성이기 때문에 미생물의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활엽수림 비율이 점점 높아지면서 낙엽의 분해속도는 빨라졌고, 그래서 숲의 땅은 빠르게 깊어지고 좋아지고 있다. 

낙엽수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매년 1ha(1만㎡)당 약 6500kg의 낙엽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 양이 엄청나다. 그 많은 양의 낙엽들이 모두 땅으로 흡수된다는 것도 놀랍다. 낙엽층을 포함하는 토양층을 보면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 깊은 숲의 오래된 토양층을 생각해 보면, 가장 위층은 낙엽층이고, 바로 아래에 부서진 낙엽층, 그 아래엔 푹신하면서 검은색의 이제는 흙에 가까운 층이 나온다. 
 

신갈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낙엽 분해되기까지 1년 여의 시간이 걸린다.

어릴 적 아버지와 높은 산에 다녀올 때면 항상 그 검은색 흙을 한두 봉지 챙겨서 내려오곤 했다. 아버지가 그 흙을 어떻게 쓰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도 부슬부슬하고 기분 좋은 느낌의 흙이었다. 좋은 숲에 가면 그 흙냄새 덕분에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또 검불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장작으로 불을 키워 솥에 물을 끓이고, 방에 불을 넣으시던 할머니와 젊은 시절 어머니도 생각난다.

그때 썼던 검불과 장작은 모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뒷산을 다녀오시며 해결했다. 이제는 이런 경험도 옛날이야기에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불을 쉽게 사용하던 생활이 많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요즘 사람들이 캠핑에서 그렇게 ‘불멍’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려면 낙엽의 종류, 토양 특성, 분해미생물의 활성, 토양 소동물의 종류와 양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낙엽은 1년에 걸쳐 분해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환경에 따라 더 걸릴 수도 덜 걸릴 수도 있다. 좋은 흙은 좋은 숲을 만들고, 좋은 숲은 더 좋은 흙을 만들어준다. 그런 숲이 우리 곁에 있을 때 몸과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리기다소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코로나로 지쳐있는 요즘, 걷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남을 피부로 느낀다. 스트레스를 풀기에 걷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걷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자연이다. 공기가 머물지 않고 바람타고 흐르는 하천 산책로, 집과 가까운 숲길, 때론 도시를 살짝 벗어난 한적한 곳으로 가족들 함께 걷는다. 

봄이 오고 있다. 촉촉한 겨울을 지내고 얼었던 땅이 녹을 때 한껏 부풀어 오르길 기대해 본다. 벌써 낙엽 아래에서 겨울을 보낸 여러 곤충과 동물들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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