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소에 있는 얼음에는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해 공기가 잔뜩 들어 있다.

포근해진 날씨 덕에 자작자작한 땅을 밟았다. 신발이 더러워질까 신경이 쓰였지만, 물이 고인 곳이나 땅이 무른 곳을 피해 이따금 큰걸음으로 걸어가는 쏠쏠한 재미가 스스로 만들어낸 작은 걱정을 잊게 해줬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군데군데 패인 길 위로 드러난 커다란 돌멩이들을 징검다리 삼아 갈 수 있어 오히려 반가웠다. 돌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는 행동이 작은 스릴을 느끼게 해줬다.

굽이진 길의 그늘에 쌓인 낙엽 아래 채 녹지 않은 얼음이나 작은 물웅덩이가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하며 티 나지 않게 살짝 비켜갔다. 흙 위 선명한 고라니 발자국 옆에 내 발자국도 나란히 내어봤다.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지니 풍경이 보였다. 귀가 열려 새소리와 바람 소리도 더 다양하게 들렸다. 앞으로 보이는 작은 언덕과 나무들의 모습은 언젠가 키워봤던 잔디 인형 같았다. 나무 사이사이에 하늘이 있었다. 새집도 보였다. 언덕으로 가까워지면 숲 안으로 해가 들어갔다.

나무 사이로 먼 하늘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매가 날아갔다. 스마트폰을 바로 꺼내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했지만 새는 이미 날아갔고, 역광의 사진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언덕을 넘어 솔밭을 지났다. 솔향의 청량함에 잠시 발걸음을 늦췄다. 하지만 솔밭 그늘은 아직 춥기에 다음 것을 기대하며 바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골짜기가 나왔다. 매년 봄마다 이곳 안쪽에서 도롱뇽 알을 봐왔다. 예년보다 물골은 더욱 깊어졌고, 물길의 방향은 다른 곳으로 바뀌어 올해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예전 모습이 남아 있는 얕은 소(沼)엔 녹았다 얼었다를 몇 번 반복해 공기가 잔뜩 들어 있는 얼음이 껴있었다. 얼음을 살짝 밟아봤다. 그 소리에 어린 시절이 잠깐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도롱뇽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힘을 멈췄다.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는 동네 산책길 풍경

지난 산책 때 쓰러져 길을 막았던 나무는 누군가에게 잘려 길가로 밀려나 있었다. 수고스럽게도 체인 톱으로 잘려나간 나무의 단면을 보곤 나 말고도 누군가 이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에 걸음이 더 즐거워졌다. 짧은 내리막길 후에 다시 오르막길을 가다보니 점점 다리와 둔근이 살짝 당겼다. 땀이 올랐다. 추운 겨울동안 잠시 개을렀던 자신을 탓하곤 앞 굽잇길을 지나면 따뜻하게 햇볕이 드는 평평한 자리가 나올 거란 생각에 잠시 쉬어갈 마음을 먹었다.

작은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생각보다 엉덩이가 많이 찼다. 더럽혀지지 않은 신발을 깔고 앉았다. 믹스커피를 넣은 보온병을 꺼냈다.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르고 살짝 식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살폈다. 떨어진 상수리나무 낙엽 사이로 물을 먹고 뱉기를 반복해 탈색된 듯 하얀색에 가까운 마른 강아지풀 무리가 인상적이었다.

나 말고도 쉬어간 사람이 많은 듯 작은 쓰레기들이 보였다.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려다 커피 마시기를 우선순위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스마트폰으로 엊저녁 보았던 드라마 음악을 들었다. 커피는 이미 다 마셨고, 두 번째 음악을 듣자니 땀이 식어 몸이 차가워짐이 느껴졌다. 무릎도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길가에 잘린 나무를 치워준 누군가를 생각하며 조금 전에 내주었던 숙제를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익숙한 풍경을 다시금 복습하다 보면 돌아가기 위한 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진다. 집으로 향한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커지면서 신발은 점점 더러워지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따금 나타나는 새로운 시점의 낯선 풍경도 빠른 발걸음이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었다. 나뭇잎을 둥글게 말아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이름 모를 벌레의 집만 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을 뿐이었다. 주인이 외면한지 오래된 논자리는 산책길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줬다.

앞으로 있을 산책 중에 개구리 알을 볼 때 쯤, 논 옆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어 보리라 생각해봤다. 흙길은 자갈길로 바뀌고 이내 포장도로가 나왔다. 탁탁탁 발을 굴러 신발의 흙을 털어냈다. 발걸음은 다시 느려졌다. 따뜻해진 날의 바뀐 모습을 기대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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