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인공호흡기를 손으로 짜던 의료진(왼쪽). 의사 오른손에는 항상 백이 위치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서쪽의 진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동쪽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기원전 262년 진나라 군사 수십만 명을 동원해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의 장군 염파는 성벽에 의지해서 방어하며 시간을 끌었다. 염파의 지구전은 강력한 진나라를 방어할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소극적인 대응에 불만을 가진 조나라 국민들은 지휘관 교체를 건의했다. 결국 젊고 유능하다고 알려진 조괄이 새 총사령관으로 선발됐다.

조괄은 매우 똑똑한 청년 장군이었으며, 군사이론으로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으나 실전 경험은 부족했다. 진나라 병력과 대치중인 장평에 도착한 조괄은 진나라 군사들이 오랜 전투에 지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 모든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아가 돌격했으나 그것은 진나라의 함정이었다. 조괄이 이끄는 수십만 명의 병력은 진나라 군사에게 포위당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조괄은 전사하고 병사들은 항복했다. 이때 진나라 군사들은 살아남은 수십만 명을 생매장하는 참극을 벌였다. 전투가 끝난 뒤에 살아남은 병사들도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사망하거나,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진나라의 행위는 역사적으로 비난 받는 일이었다. 

1853년 크림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이 전쟁을 벌였다. 나폴레옹도 물리쳤던 러시아군은 오스만제국에 쉽게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면서 복잡하게 바뀌었다. 러시아를 견제한 영국은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함께 오스만제국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3년간이나 계속돼 수십만 명이 희생됐다. 크림전쟁은 전투보다 불결한 환경으로 인한 전염병으로 더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크림전쟁에 부상병으로 돌보던 나이팅게일은 위생환경을 개선하고 환자들을 중증도에 따라 분류해 사망률을 40%에서 2%로 낮추는 기적을 보였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영국군은 2만여 명이 희생된 반면, 다른 국가들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이팅게일의 활약은 환자 치료에 있어서 깨끗한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탱크형태 호흡보조장치

산업혁명 이후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기 시작하면서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아마비도 그 중 하나였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소아마비는 감염된 어린이들이 생명을 건지더라도 마비증상이 남게 됐다.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호흡근육 마비였다. 인공호흡기와 같은 장비가 없었던 당시에는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 치료 방법이 없었다. 소아마비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됐다. 1929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드럼통에 음압을 가해서 몸 밖에서 폐를 강제로 펼쳐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호흡보조장치를 개발했다. ‘철로 만들어진 폐(Iron lung)’라는 이름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계는 전기로 작동했고, 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철로 만들어진 폐는 기도에 직접 공기를 넣어주는 방식이 아니어서 침이나 가래가 기도를 막는 경우에는 효과가 없었다. 

1950년대 호흡보조장치로 치료중인 환자들

1952년 덴마크에서 소아마비가 유행했다.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병원에 몰려들었다. 코펜하겐의 전염병 전문병원인 블레그담병원에는 호흡을 도와줄 강철폐는 단 한 개뿐이었다. 6개의 작은 호흡 보조기가 있었지만 수백 명의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매일 수십 명이 입원했고, 그 중에서 열 명가량이 호흡곤란에 빠졌다. 모두 합쳐 일곱 개 뿐인 호흡보조장치는 한계에 부딪혔고 절망적인 상황에 환자들 대부분 사망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라센은 마취과 전문의였던 입센을 찾았다. 입센은 마취기계에 마취제 대신 산소를 넣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환자가 숨을 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려는 것이었다. 수동적인 강철 폐 방식보다 기도에 관을 넣어 직접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확신했지만, 처음 시도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8월 27일 12세 된 호흡곤란과 폐렴까지 동반돼 고통받는 소녀에게 최초의 인공호흡기 치료가 시도됐다.  많은 의료진이 모인 가운데 기관 절개를 통해 산소를 공급할 관이 기도로 들어갔다. 그러나 격렬한 기관지 경련이 일어났다. 입센은 마취제를 투여해 소녀를 무의식상태로 만들었다. 인공호흡기 치료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소녀에게서 공을 막은 가래를 뽑아내고 산소를 집어넣자 창백한 피부는 다시 발그스레해지기 시작했다. 호흡이 원활해지면서 소녀는 평안하게 잠자기 시작했다. 

입센의 인공호흡기 치료가 성공하자 라센은 곧 병원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입센의 인공호흡기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펌프를 눌러서 산소를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수백 명의 의대생과 간호사가 돌아가면서 35개 병상 옆에서 산소펌프를 가동했고, 나중에는 시급을 주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집했다. 80%가 넘던 사망률은 25%까지 떨어졌다. 

사람 손으로 짜던 펌프는 기계로 바뀌었고, 인공호흡기는 중환자치료의 필수장비가 됐다. 인공호흡기 관이 빠질 경우와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반 병실과 달리 간호사가 바로 관찰할 수 있도록 간호사실과 병상이 함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치료 병실이 생겼다. 위험기 환자의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 여러 검사와 심장, 호흡 상태에 대한 실시간 관찰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호흡기능을 보조하는 인공호흡기와 신장 기능을 대신하는 투석 장비, 체외막산소공급 등 다양한 장비와 치료가 시도되면서 위중환 환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위중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노력이다. 첨단 의료장비도 잘 활용할 수 있는 의료진이 있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면서 위중한 환자진료 공간이나 중환자실 부족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의료 지원에 대해서 유난히도 인색한 보건당국을 보면 안타깝다.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처럼 정부도 중환자실 확보뿐 아니라 의료계에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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