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의길 순례자들에게 25년째 쉴 곳 제공
세계대회 우승 2회 하모니카 보급에 힘써


몸과 마음의 안식처이자 한없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종교가 아닐까. 그만큼 종교는 무한하고 조건이 없다. 그래서 일까? 25년 넘게 김대건 신부 수난의 길을 찾은 낯선 이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곳이 있다.

순례자들이 편안하게 더위나 추위를 피해 시원한 음료나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무인카페를 운영하는 하모촌이다.

하모니카 연주자이기도 한 장만수 촌장은 하모촌이 순례자들을 위한 ‘평화로운 쉼터’이기를 바란다.

하모촌은 처인구 이동읍 묵리계곡 상류 장촌마을에서 더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순례자들에겐 ‘평화로운 쉼터’로, 음악가들에겐 ‘하모촌’으로 불린다. 평화로운 쉼터 운영자이자 하모촌 지킴이(순례자들이나 연주자들은 촌장이라고 부른다)는 하모니카 연주자 장만수(69)씨다.

순례자들이나 하모니카 연주자들에겐 하모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장만수 촌장은 2007년 용인경찰서를 떠나기까지 31년간 경찰에 몸담은 경찰관이었다. 1980년대 시위대를 진압하다 부상을 입은 뒤 찾아온 우울증세를 이겨내고자 찾아든 곳이 지금의 하모촌이다.

하모촌 앞이 김대건 신부가 순교 후 유체 이장 경로다. 애덕고개와 은이성지 방향 이정표가 입구에 서 있다.

하모촌은 장 촌장에게 숙명과도 같은 곳이다. 우연히 찾아 들어온 깊은 산골이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지이자 순교 후 유체 이장 경로 중 일부인 수난의 길임을 알게 된 후 용인성당을 찾아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차츰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다 순례자들이 화장실조차 없이 걷는 것을 보고 화장실을 설치한 것이 하모촌의 시작이네요”

장 촌장이 설계하고 직접 지은 하모촌 입구에는 순례자들이 커피나 물을 마실 수 있는 무인카페가 설치돼 있다. 더위나 추위를 피해 쉴 수 있는 카페에 그치지 않고, 야간 순례자을 위해서는 하모촌 공간도 말없이 내준다.

그의 나눔은 하모촌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 촌장은 경찰 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했던 아마추어 연주자를 넘어 2007년 이후 독학하며 하모니카 연주자로서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하모촌 한쪼에 여성 적가들의 전용 전시공간인 하모&리 갤러리가 10월 31일 정식으로 개관했다. 갤러리 옥상에는 작고 멋진
야외 연주공간에서 연주를 선보이는 장만수 하모니스트.

2013년 제1회 서울국제하모니카 페스티벌에서 독주부문 3위를 하며 탄력이 붙었다. 이때부터 제자들을 양성했는데, 이듬해 2회 대회에서 독주부문 1위, 제자와 함께 한 합주부문에서 2위를 하며 하모니스트로서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하지만 장 촌장은 연주자로서만 아니라 노인복지관이나 복지시설 등을 찾아 재능을 나누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하모니카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는데, 용인 안성 평택 등 노인복지관의 하모니카 강사 대부분은 장만수 촌장의 제자들이기도 하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드림트리오’도 그가 배출한 하모니카 연주자들이다.

“하모니카는 배우기도 쉽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민요부터 트롯, 팝, 재즈까지 모든 장르를 연주할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하모니카를 만난게 큰 행운이에요. 재능을 나눠주고 갈 수 있어서”

장 촌장의 하모니카 예찬론은 끝이 없다. 취미로서 소통할 수 있고, 고령화 시대 노인들에게 딱 맞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담 없이 여생을 지인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로 가는 순례길 중간 처인구 이동읍 묵리 골짜기에 '평화로운 쉼터' 하모촌이 있다.

장 촌장은 최근 하모촌 한쪽 공간을 여성전용 갤러리로 내놓으며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정식으로 개관한 하모&리 갤러리다. 그는 하모촌이 어떤 곳으로 기억되길 원할까?

“하모촌은 순교자의 숨결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곳으로 (내가) 묻힐 곳이지만, 무엇보다 순례자들의 평화로운 쉼터로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하모니스트 장만수씨는 해마다 10월 마지막 날 밤 하모촌에서 가을음악회를 연다. 올해에도 하모리 갤러리 개관 기념으로 열린 ‘시와 음악이 있는 작은 음악회’에서 하모니카 선율이 깊은 산골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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