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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항쟁 영웅 김윤후, 국난극복의 성지 처인성 성역화 필요하다

해마다 10월이면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상징과 같은 경기도기념물 제44호 처인성에서 ‘대몽항쟁 희생자 및 김윤후 승장 추모 다례재’가 열린다. 다례재는 영가(죽은 사람의 넋)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불교의식이다.

올해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규모는 크게 축소됐다. 용인시불교사암연합회(회장 법경스님)와 용인시불교전통문화보존회(회장 주상봉)는 14일 용인지역 사찰 스님과 보존회 관계자만 참석한 가운데 처인성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다례재는 용인시가 처인성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역사교육관 건립 공사를 시작한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처인성은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임에도 그동안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복원은 고사하고, 열악한 주변 환경과 시설부족으로 사실상 방치돼 왔다. 이에 지역 언론과 연구자들은 처인성에 대한 종합정비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불교계와 단체는 애민정신과 호국불교의 상징인 승장 김윤후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용인시는 45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처인성 역사교육관을 2021년 말까지 완공, 이듬해 6월에 개관할 계획이다. 이에 본지는 승장 김윤후와 처인성의 의미에 대해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대몽항쟁 승리 이끈 승장 김윤후

지상작전사령부 호국선봉사가 787년 전 처인승첩을 기리며 지난해 12월 대웅전 내부에 봉안한 김윤후 승장 진영 모습.

김윤후는 1232년(고려 고종 19) 현 용인 백현원(白峴院)의 승려로 있을 때, 몽골대군이 침입해 오자 지금의 처인성(處仁城)으로 피란해 성민들을 지휘했다. 때마침 몽골군이 처인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오자 처인성 피란민들을 지휘해 몽골군과 싸웠다. 특히 몽골 원수 살리타이를 활로 쏘아 죽여 몽골군을 퇴각시켰다. 

고종이 살리타이를 사살하고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에게 상장군의 직위를 내리자 김윤후는 공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며 “저는 전쟁을 당해서도 무기를 잡고 일어서지 못했던 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잘 것 없는 공으로 후한 상을 받겠습니까?”하며 사양했다는 일화가 <고려사>에 나온다.

공을 양보한 승려 김윤후에게 고종이 관직을 낮춰 섭랑장으로 임명하자 그때서야 관직을 받아들이고, 이후 군인으로 활동하며 대몽전쟁 기간에 큰 공을 세웠다.

1253년(고종 40) 10월 승장 김윤후는 충주산성 방호별감 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이때 야굴이 이끈 몽골의 대군이 또다시 쳐들어왔다. 그는 70여 일 동안 몽골대군을 맞아 뛰어난 지휘력을 발휘해 적을 물리쳤다. 식량이 떨어져 위태롭게 되자 김윤후는 “만일 힘을 다하여 싸우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관작을 제수할 것이니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하고 병사들을 독려했다고 전해진다. 이어 관노의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눠 주니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워 몽골군을 물리쳤다.

고려 조정은 그 공을 높이 사 김윤후를 감문위상장군에 임명했고, 그밖에 전공을 세운 관노, 백정 등에게 모두 관작을 제수했다. 충주산성 전투의 공로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됐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몽골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윤후 승장에 대해서는 <고려사> 열전, <고종세가> <원종세가> 등에 짧은 내용만 전해 안타깝게도 자세한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국난극복의 성지 역사유적 ‘처인성’

역사공원으로 새로 조성된 경기도기념물 제44호 처인성 진경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처인성. ‘처인성승첩기념비’가 없었다면 아마 야트막한 뒷산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한동안 방치돼 왔다. 국난극복의 성지로 기록이 남아 있는 성터로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라는 말이 무색한 정도였다.

처인성은 둘레 약 425m, 높이 3~6m 가량의 작은 토성이다. 이곳은 고려 때 ‘처인부곡’ 으로 불렸는데, ‘부곡’은 ‘향’, ‘소’와 함께 천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곳을 의미한다. 처인성 지형을 보면, 야산 끝자락인 구릉 위에 쌓은 평지성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서 성벽 일부는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처인성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출토됐는데, 백제시대에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다. 시굴조사 때는 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와와 다양한 종류의 토기와 도기 등 생활 유물이 출토됐다.

처인성에서 발견된 유물 중 중요한 것은 고려도검인데,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단 2점의 고려시대 칼 중 하나로 큰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처인성에서 고려시대에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유물이기도 하다.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여서 군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긴 지역이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군량을 저장하던 군창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1232년 승려 김윤후는 몽골의 2차 침입 당시 처인부곡민과 인근 승려들을 지휘해 원수 살리타이를 사살하고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됐으며 부곡민들도 평민이 됐다. 처인성과 처인현의 이름은 그대로 남게 됐는데, 1414년(조선 태종 14)부터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쳐 용인으로 부르게 됐을 정도로 ‘처인’은 유서 깊은 명칭이다.

일찍부터 김윤후 승장 선양사업 벌인 충주시

충주시는 1253년 몽골대군을 물리친 충주산성 전투 승리를 기념해 2003년 9월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을 세웠다. 전승기념탑 아래에 충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 장군을 비롯한 민중의 의연한 항전 모습이 조각돼 있다.

충북 충주시는 역사인물 11인 중 한 명으로 승장 김윤후를 선정해 기리고 있을 만큼 중요 역사인물로 홍보하고 있다. 

충주시는 2003년 9월 고려시대 대몽항쟁에서 처인성 전투만큼 가장 큰 전과 중 하나인 충주산성 전투 승리를 기념해 종민동에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을 세웠다.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은 높이 15m, 기단부 지름 10m로 탑신은 산성의 성벽을 상징하는 사각형 화강석으로 표현됐다. 상단부에 청동으로 양각해 부착한 ‘1253’은 충주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연도를 표기한 것이다. 전승기념탑 아래에는 5인의 군상이 있는데, 그 당시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윤후 장군을 비롯한 민중의 의연한 항전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탑 뒷면 부족벽에는 충주산성 전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투장면을 재현했다. ‘1253년 방호별감 김윤후는 지역의 관리, 군병, 농민, 승려, 노비 등을 지휘해 70여일 동안 몽고군 대공세에 맞서 사력을 다해 싸웠다. 견디지 못한 몽고군은 포위를 풀고 고려 땅에서 철수하게 된다’는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충주시는 대몽항쟁 승리를 기념해 김윤후 장군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0여 년째 ‘김윤후 장군 추모제’ 행사를 열고 있다. 한편, 충주박물관에는 대몽항쟁 시 70일간의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충주성 싸움을 전투도로 재현해 놓았고, 전투도 바로 왼쪽에는 김윤후 장군의 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TV드라마·역사다큐서 조명된 대몽항쟁의 영웅

역사공원으로 새로 조성된 경기도기념물 제44호 처인성 진경

용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처인성 전투, 그리고 세계 최강 몽골군을 두 번 격파한 고려의 영웅 승려 김윤후. 김윤후는 TV에서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나 고려시대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심심치 않게 등장해 왔다.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드라마 속에서도 말이다.

2007년 9월 15일 KBS1 TV는 인물을 통해 보는 역사 <한국사傳(전)>에서 승려 김윤후를 집중 조명했다. 제13회 ‘몽골을 두 번 격파하다-고려 영웅 김윤후’ 편이다. 고려 영웅 김윤후 편에서 <한국사전>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그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했다.

<한국사전>은 살리타이와 몽골군을 향해 처인성 부곡민들이 어떻게 대항했으며, 승려 김윤후가 어떻게 살리타이를 사살했는지 등을 재구성해 보여줬다. <한국사전> 제작진은 처인성에서 출토된 고려도검을 통해 처인성 전투의 흔적을 취재해 가는 여정을 영상으로 전하기도 했다.

한국사전 김윤후 편이 방영된 지 9년이 지난 2016년 9월 4일 KBS1 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승려 김윤후, 세계최강 몽골군을 두 번 무찌르다’ 편이 방영됐다. 최태성 작가는 승려 김윤후 편을 퀴즈로 시작했다. ‘원충갑이 북을 한 번 치고 매를 날려 치악산에서 합단적을 꺾고, ○○○은 화살 하나로 돼지를 맞혀 죽여 황성에서 몽병을 물리쳤으니, 이들은 모두 유(儒)나 승(僧)이었고, 무를 숭상하는 자나 뛰어난 장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의병운동의 선구자인 조헌이 모집 격문에 선례를 들어 민중봉기를 이끌어내면서 그 예로 들었던 인물이 바로 김윤후였다는 것이다.

김윤후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2년 MBC드라마 <무신>이었다. <무신>에서 주목받는 배역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금강스님 김윤후였다. 금강스님 김윤후는 주인공 김준의 무술 스승으로 등장해 시청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몽골과의 싸움(처인성 전투와 충주산성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김준과 함께 최고의 무사로 거듭나는 핵심인물로 그려졌다.

지작사 선봉사 김윤후 승장 진영 봉안

지상작전사령부 호국선봉사(주지 보경법사·처인구 역북동) 대웅전에는 김윤후 승장 초상화가 자리하고 있다.  호국불교정신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해 2018년 김윤후 승장 진영 조성에 나선 것이다. 전통불화방식으로 제작기간만 1년이 걸렸다. 승장 김윤후는 장군이 아닌 스님으로 표현돼 있다. 

‘승복 속에 갑주(갑옷과 투구)를 입고, 활을 든 승장의 용맹과 염주를 들고 부곡민들을 자비로 섭수하셨던 덕화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문구가 대웅전 입구 김윤후 승장 진영 과정을 설명해 놓은 안내문에 새겨져 있다. 

선봉사는 지난해 12월 16일 처인승첩이 있었던 그날을 기리며 조성한 김윤후 승장 진영 봉안식을 가졌다. “화살 한 대로 나라를 평안케 하노라” 김윤후 승장 초상화에 써 놓은 글귀는 국태민안과 조국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다.

처인성 역사공원과 교육관 건립은 김윤후 승장과 처인성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시작이어야지 끝이어선 안 된다. 불교계와 향토사학계를 비롯한 시민들의 목소리다.

함승태 기자  stham@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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