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꽃

산수국의 미덕한동안 도대체 비가 언제 오려나 싶었다. 땡볕 아래서 매일 화단과 텃밭에 물을 주는 것이 힘드니 ‘제발 비라도 좀 내려주면 좋겠네’ 하고 있던 차에 들리는 비 예보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반가운 비 예보를 믿고 물주기를 걸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비는 오지 않았고 햇빛만 쨍쨍하니, 물주기를 거른 게으름의 탓을 애꿎은 기상청에게 돌렸다. 그렇게 장마인 듯 장마 아닌 날씨가 한참이더니 요 며칠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안 올 땐 안 와서 걱정, 비가 오니 물새는 곳은 없나, 화단의 화초와 잘 익어가고 있는 고추가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우산장수, 짚신장수’ 동화 속 어머니가 꼭 내 맘 같다. 

본격적인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화단 꽃들은 맥을 못 추기 일색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앞 다퉈 큰 키를 자랑하던 베르가못이나 톱풀, 접시꽃 등은 장맛비와 바람에 휙 쓰러지고 말았다. 맥없이 쓰러지는 꽃들로 화단은 금세 난장판이 됐다. 그래도 거친 빗속에서 꿋꿋이 버티는 꽃이 있었으니 바로 수국이다. 한자로는 수구화(繡毬花)라고 하며,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꽃 색깔이 아름답고 모양이 둥글고 풍성하니 수구화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꽃이다. 학명에 (Hydrangea)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그리스어로 ‘물’이라는 뜻이다. 영어 이름에서 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듯, 수국은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한다. 장마철인 지금이 수국에겐 제철이라 하겠다.

도시의 공원이나 화원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국은 꽃이 크고 풍성하며, 색깔도 화려해서 원예용 나무로 사랑받는다. 토질에 따라 꽃 색깔이 변하는데 산성 토양에서는 푸른 빛을,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붉은 빛을 띤다. 그러나 요즘은 토질에 상관없이 발색이 되는 종이 개발돼 핑크색, 보라색 등 화려한 수국 색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수국 꽃은 불두화와 마찬가지로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이다.(용인시민신문 5월 26일자 ‘백당나무와 불두화’ 참조) 원형의 풍성한 꽃은 간간히 불두화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봄에 피는 불두화를 보고 수국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씨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번식은 가지를 꺾어 심는 삽목으로 한다.
 

산수국

무성화인 수국과 다르게 씨를 맺는 수국이 있는데 산수국이다. 산수국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 산지에서 자생한다. 습하고 그늘진 계곡 주변에서 잘 자란다. 수국처럼 탐스럽고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색깔과 꽃모양으로 산수국도 수국과 마찬가지로 원예, 조경용으로 인기가 많다. 산수국의 진짜 꽃은 약 5mm정도 크기로 작은 꽃들이 무수히 모여 있다.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유성화로 수정이 되면 씨앗을 맺는다. 작은 꽃잎 5장과 하얀 수술이 아름답지만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암·수술은 없지만 크고 화려한 무성화(헛꽃)를 발달시켰다. 수국은 전체가 무성화인 반면, 산수국은 유성화와 무성화를 모두 가지고 있다. 작은 유성화 대신 크고 화려한 무성화 몇 송이로 벌이나 곤충을 유혹한다. 그늘진 숲속 계곡에서 곤충을 유혹하는 산수국의 노력이 가상하다. 
 

수정된 산수국

진짜 꽃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양을 극대화하고, 크고 화려하지만 양을 줄인 헛꽃으로 유인하는 산수국.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는 산수국의 지혜다. 요즘 많이 따지는 가성비 최고가 아닐까. 수국의 지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진짜 꽃들이 모두 수정이 되면 헛꽃은 고개를 돌린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매력을 포기하고 시든 꽃처럼 축 쳐진 어깨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제 됐으니 수정되지 않은 다른 꽃들을 찾아가시오’ 라고 곤충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나 혼자 곤충을 차지하는 대신 옆에 있는 다른 꽃들을 생각한다. 산수국에게 욕심은 필요 없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이 세간에 화두다. 봄에 집을 사려다 못 산 친구가 몇 개월 사이에 급격히 오른 집값에 한숨을 쉬었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은 지 한참인데 아직 집이 없는 사람이 많다. 아이러니다. 사람 욕심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산수국에게 배우면 좋겠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니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넘기는 미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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