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조씨 회곡공파·한산이씨 음애공파 500년 인연 기념
조광보·광좌 형제 등 4인의 명현 이름과 연혁 길이 새겨 

사은정 앞에 설치된 사적비 모습.

“나(음애 이자)와 정암(조광조) 그리고 자네 선친 형제의 의는 형제와 같았고 실로 도가 부합하였다네. 정암과 나의 선산은 용인에 있었고, 방은(조광보) 형제의 전장도 용인에 있었는데, 서울에서도 만나지 않는 날이 없었고, 향리에 내려오면 서로 어울려 두암에서 천렵하고 심곡(현 상현동)에서 화전을 해 먹었으며, 방동에서 꽃을 보곤 하였네.…(중략) 우리 넷은 한 칸 집을 두암 위에 지어놓고 여기서 낚시도 하고, 나물도 캐고, 나무도 하고, 농사도 하는 이 네 가지를 즐기기로 약속하고 정자 이름을 사은(四隱)이라 붙였다네.”

「음애 이자와 기묘사림」이란 책자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음애 이자 선생이 조광좌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끔찍했던 기묘사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광조는 유배지로 가던 중 사약을 마셔야했고 조광좌(1484~1521년)는 28세의 나이에 옥사하고 말았다. 벼슬길을 마다했던 조광좌의 형 조광보는 화를 면하고 그의 호 방은골(현재 한국민속촌)에서 은둔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자(1480~1533)는 목숨은 건졌지만 처가인 충북 음성으로 유배되어 ‘그늘진 언덕’(음애동)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의 호 ‘음애’는 여기에서 연유한다. 

중종 반정 이후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핵심세력이면서 용인이라는 지역적 연고를 바탕으로 두암산 자락 바위(斗巖) 위에 정자를 짓고 당대 명사들이 학문을 논하고 여유로움을 즐겼던 역사적 명소가 바로 사은정이다. 

지은 지 500년 만에 기흥구 보라동 소재 사은정(용인향토유적 제50호)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한 사적비가 15일 현지에 건립됐다. 사은정보존회(회장 이진규)가 중심이 돼 마련된 이날  제막식엔 보존회 회원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사은정보존회는 한양조씨 회곡공파와 한산이씨 음애공파 두 집안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결성돼 매년 사은정 관리와 유지 계승사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은정 앞 벽면바위 ‘두암’은 1961년 기흥저수지 축조 때 보를 막는데 사용되는 바람에 지금은 볼 수 없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