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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심 의료체계의 유럽, 코로나19의 파도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원장)
  • 승인 2020.03.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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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1883년 독일제국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법을 제정했다.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독일은 통일됐지만 수많은 세력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특히 기존의 넓은 땅을 가진 귀족 계급과 산업화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며 부를 축적한 신흥 세력들 간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 귀족과 신흥 세력의 갈등 속에 많은 수를 차지했던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이 확산되면서 하나로 뭉치게 됐다. 귀족들을 이끌던 비스마르크는 신흥 세력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하나의 당근을 던졌다.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1880년 산재보험 입법이 시도됐다. 비스마르크는 정부가 부족한 보조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보조금을 통해 산재보험의 운영을 좌우하면서 노동자들과 더불어 신흥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복안이었다. 비스마르크의 속셈을 간파한 신흥 세력들은 국고보조금을 거부하고 스스로 돈을 마련해서 산재보험을 설립했다. 1883년 의료보험은 평소 돈을 조금 모았다가 질병이 있는 경우 지급하는 단기 지급 성격의 제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막대한 인명 손실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전리품을 얻지 못했던 이탈리아는 경제 불황과 갈등이 심각해졌다.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에서 검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개인보다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애국심을 강조하는 사람들이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 자본가, 노동자들로 나뉘어 분열되는 것을 반대하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922년 10월 22일 검은 셔츠를 입은 3만 여명이 로마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를 중간에 차단했으나, 10월 28일 약 9000여 명이 로마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총리는 군대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고 했으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력 사용을 거부했다. 정부는 해산되고 39세의 젊은 지도자가 새로운 총리가 됐다. 베니토 무솔리니다. 

무솔리니는 선거제도를 바꿔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선심성 정책을 추진했다. 무솔리니의 활동 중 하나가 의료제도 정비였다. 19세기 의료 발전은 높은 비용이 들었고 국민들은 서로 돈을 모아 기금을 만들어 치료비를 준비했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가톨릭병원이나 자선 단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무솔리니는 개인적인 자금을 국가로 통일하고 나라에서 질병을 치료한다는 의료보장 개념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독재 권력을 강화했다.

영국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 닥친 경제 불황은 빈곤층의 의료 이용에 큰 어려움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영국 경제는 파탄 일보직전이었고, 민간 보험회사들도 파산 직전에 직면했다.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의 한계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노동부 차관이었던 윌리엄 베버리지는 사회보험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한 뒤 1942년 하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의 보고서는 자유시장경제 중심의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격론이 벌어졌다. 전쟁 피해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영국 국민들은 베버리지 주장에 환호했고, 1946년 영국에서 건강보험이 시작됐다. 

정치적 이유, 독재자의 선심, 국민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 등 다양한 이유로 시작됐던 의료보장 제도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확산돼 유럽 특유의 국가 중심 의료체계가 확립됐다. 국민들은 의료비 걱정을 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모든 것은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국가 개입이 본격화 되면서 효율성이 낮아지기 시작했고 비용은 급증했다. 낮은 처우에 우수한 의사들은 국경을 넘어갔다. 

막대한 의료비는 유럽 국가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2017년 기준 의료비가 한국은 GDP의 7.6%이었지만 이탈리아는 8.8%, 영국 9.6%, 독일 11.2%에 달한다. 비용은 늘어났으나 의료 효율은 낮아져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한국은 16.6회나 되지만 독일은 9.9회, 이탈리아 6.8회, 영국은 5회에 불과했다. 총 병상 수 역시 한국은 인구 1000명당 12.3개인 반면, 독일 8.0개, 이탈리아 3.2개, 영국은 2.5개에 불과하다. 특히 이탈리아는 최근 경제 불황 여파로 많은 의사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해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이탈리아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 2012년 인구 10만 명당 11.1명이었던 졸업생 수를 2018년 13.3명까지 늘렸으나 임상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9명에서 4.0명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최근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코로나19는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탈리아는 의료진의 한계를 뛰어넘는 환자가 발생해 고령 중증 환자 치료를 포기하고 희생 가능한 환자 중심으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영국은 의료 한계를 고려해서 아예 확진 검사 자체를 포기하고 경증은 집에서 지낼 것을 권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시간 국가 중심 의료체계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상황이다. 

민간의료 중심의 한국도 어려운 상태에서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코로나19의 의료한계 상황을 힘겹게 이겨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의료제도 역시 의료진의 혹사와 과로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의료계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과 개인위생이라는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구,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유행의 큰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수도권, 특히 우리 용인지역도 하루가 다르게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아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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