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주제 ‘구조장비’ 대표 연작  

최미아 작가

전시회장 바닥에는 심한 악취가 나는 비료가 깔리고 그 위에 어른 키보다 훨씬 큰 녹슨 포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 작품은 자유로운 순수미술가 최미아의 1999년 작품 ‘구조장비’. 대중에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늘 충격적이면서 신선했다. 

그의 자유분방한 표현력은 초기 판화작품을 통해 구현됐다. 대학 시절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이후 판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이상욱, 하동철 등 국내 유명 판화 작가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최미아 작가의 판화 작품은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상반된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작품 속 세밀한 표현 방식은 강렬하면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제시한다. 대표작 중 하나인 ‘복합적 관계’ 연작이 그렇다. 자기 자신과 타인이 가진 감정의 최소 단위를 세포로 보고 수많은 감정으로 타인과 연결돼 있는 자신을 작품에 담았다. 수천개의 곧고 가는 선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뜻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강한 자신만의 감정은 진한 색으로 표현했다. 그 안에서 얽히고설킨 수많은 감정의 최소 단위는 새로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이보다 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길이 있을까 싶다. 

최 작가의 판화 작업은 1995년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주하면서 설치 쪽으로 기운다. 생전 처음 겪는 농촌에서의 삶은 그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재료의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설치 작품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용인에 땅만 사놓고 급하게 내려왔거든요. 처음엔 작은 판잣집에서 생활을 시작했어요. 난방도 화장실도 없는 집이었죠. 개구리 소리 우렁찬 논이 있고 새벽엔 물안개가 자욱했죠. 밤에는 은하수가 쏟아졌어요. 내 삶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도심 한복판에서 치열한 작가의 삶을 살던 그가 매일 주변 논밭을 산책하는 게 일이 됐다. 그런 그의 눈에 띈 것은 주변에 핀 들꽃이나 나무 같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버려진 유리병 같은 것들이었다. 버려진 유리 조각을 주워 땅 위에 ‘삽’ 모양을 만들었다. ‘Rescue equipment’, 구조장비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훗날 최미아 작가의 대표 연작으로 이어졌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갑자기 무너졌던 때였어요. 온 국민의 삶은 절망과 불안, 동요로 가득 찼죠. 실직과 대량 해고, 구조조정 그로인한 가정파탄, 결식아동 등 수많은 사회적 이슈가 생겨났어요. 그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구조장비인지 찾아야했죠.”

최미아 작가의 ‘삽질’은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로서의 구조장비를 의미했다. 이러한 작품 코드는 녹슨 커다란 포크부터 쇠빗, 외발자전거, 날카로운 톱에 둘러싸인 목발 등 예상을 뛰어넘는 재료를 채택한 설치 작품으로 탄생했다.       

그의 작품이 늘 어두운 이면만을 비췄던 것은 아니다. 작은 화분에 푸른빛의 목발이 세워져있고 그 위에는 꽃이 피어있는 1999년 ‘나무’라는 작품은 분위기가 다르다. 

“지금은 힘들고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목발은 ‘장애’ 즉 ‘어려움’을, 그 위에 놓인 꽃이나 사과는 ‘희망’을 상징했죠.”

최미아 작가의 작품은 이렇듯 늘 새롭고 과감하지만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그가 대중과 작품으로 소통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타고난 표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복잡하기 만한 설치미술이 아닌 누구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의 자유로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고 그 위를 노래 ‘오빠생각’ ‘식구생각’의 가사로 덮은 작품인 ‘식구생각’이 그렇다. 굳이 작가의 설명이 없어도 대중은 작품 앞에서 먹먹함을 느낀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가족이라는 말 대신 식구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 역시 대중을 이끄는 노련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메시지와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제가 예술을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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