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성모병원에서 5년간 30조6000억 원을 투자해서 거의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입장에서 의료비를 싸게 해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의료계 역시 환자 부담이 줄어들면 좋은 치료를 돈 걱정 없이 진행할 수 있으니 당연히 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렇게 좋은 정책에 반대했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으로 모든 의료비용을 싸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총 의료비는 2018년 GDP 기준 8.1%로 OECD 평균인 8.8%보다 훨씬 적다. 영국 9.8%, 일본 10.9%, 프랑스 11.2%, 독일 11.2% 등 선진국들이 GDP의 10% 정도를 의료비로 사용하는 상황과 비교하면 한국의 총 의료비용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한국의 총 GDP가 1780조원이니 1%가 적다는 것은 17조원을 적게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의료비용은 적고 국민들은 쉽게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국민 부담을 ‘더’ 낮추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특진료, 1인실, 초음파, MRI 등 그동안 비급여였던 의료비가 건강보험 적용이 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더 싼 가격으로 그동안 망설였던 검사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국민 건강 측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건강보험 재정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최근 국회 예산처가 작성한 건강보험 재정은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17조2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됐다. 당초 예상했던 13조5000억 원보다 3조7000억 원 더 많아진 것이다. 보건 당국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사무장병원, 불법면허 대여약국 등 불법 기관과 보험료 체납, 불법 사용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불필요한 진료를 유도하는 사무장 병원이나 면허를 빌려줘 무자격자에 의해 운영되는 불법 약국은 처벌해야 하겠지만, 사소한 실수도 엄격한 법 적용을 시행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의 한 의료기관이 6460원을 ‘착오 청구’했다는 이유로 업무정지 3개월을 통보받아 파문이 일기도 했다. 수천 건의 검진 자료 중 단 한 건의 오류가 발생했음에도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이다. 보건 당국의 가혹할 정도의 엄격한 단속은 전국적인 현상이고 용인도 예외가 아니다. 용인에서도 보건 당국이 일부 의료기관에서 장시간 자료 조사 후 몇 건의 오류에 대해 엄중한 행정처분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 처벌 규정은 최근에 개정돼 일선 의료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가혹할 정도의 엄중한 단속을 통해서 건강보험 재정이 튼튼해지는가 라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최근 10년간 불법 기관에서 회수된 금액은 1300억원, 타인의 보험증을 도용하는 등 불법 사용은 257억 원이다. 수조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 상황을 비교해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국민들이 보험료를 적게 내고 정부가 부담해야 할 지원금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은 6.46%인데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엄청 저렴한 셈이다. 무상의료라고 하는 유럽 국가들도 소득의 10% 가까운 비용을 징수해 의료기관 진료비로 충당하고 있다. 국가보험제도가 없는 미국의 경우 매우 다양한 보험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2019년 평균 1인당 403달러를 보험료로 지출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건강보험을 도입할 당시 국고 지원을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2007년부터 건강보험법에서 국고지원금을 수입의 20%로 정했는데,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는 2019년에는 13.6%로 박근혜 정부의 15.3%보다 더 낮은 상태이다. 국민들이 성실하게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를 국가가 미납하고 있는 셈인데, 그 금액이 매년 수조 원에 이른다. 국고지원금만 정상화 되어도 상당한 적자가 해소될 수 있다.

한국의 의료비는 매우 낮은 상황이고 싸고 좋은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와 생명을 다루는 주요 전문과의 기피 현상은 어떻게 보면 한국 의료의 어두운 현실이다. 의료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안전하고 좋은 의료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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