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1000호 맞은 용인시민신문 20년

용인시는 1996년 군에서 도농복합도시로 승격했다. 이후 3년만인 1999년 <용인시민신문>이 창간호를 발행하고 본격적인 견제에 들어갔다. 20년이 흐른 2019년 용인시는 인구 107만의 대한민국 중요 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용인시민신문>은 1000호를 맞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용인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에는 지역언론으로 함께 했다. 용인시청에 등록된 언론사만 수백 곳에 이른다. 기자명수로 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용인시민신문>이 가장 신속하게 보도, 공명정대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저 늘 노력하는 자세로 20년을 우직하게 걸어왔다. 그곳에는 흔하지 않게 ‘특종’도 있었고, ‘눈물’과 ‘공감’도 있었을 것이다. 언론이 더 분명하고, 빨라질 수 있도록 반성의 자세로 지난 20년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다.

용인시 정체성 회복에 함께 했습니다

20년동안 용인시민신문이 사용한 제호

급속한 인구증가로 용인시 정주의식은 퇴색되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전통은 물론이고 정체성도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간부터 <용인시민신문>은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1999년 4호부터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80주년을 기리는 시점에서 ‘좌전고개를 만세고개로’란 제목을 달고 기획기사가 나갔다. 외세항쟁 때마다 투쟁의 중심지 역할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은 마침내 용인항일독립운동기념사업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또 좌전고개에 3·1만세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같은해 기흥읍 영덕리가 인근 대도시 수원으로 편입되는 것에 강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데 함께했다. 당시 용인시의회가 추진한 수원 편입 반대 서명운동에는 시민 5만2731명이 참여했다. 그때 기준 용인 역사상 최다 서명이었다. 
기흥구에 위치한 경부고속도로 수원IC 제 이름 찾기 운동도 적극 보도 했다. 2007년 당시 행정구역이 다른 수원IC를 신갈IC로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을 지면에 담았다. 당시 주민들 뿐만 아니라 용인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한국도로공사가 수원IC 명칭 변경에 대한 비용 부담과 교통량 분산 필요성을 주장하며 뜻을 굽히지 않자 시의회가 결의문을 채택한데 이어 도로공사를 항의 방문하며 용인시민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10만명 서명운동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7년이 지난 2014년에 수원‧신갈IC로 변경했다. 

2007년에는 <용인시민신문>과 시산악연맹, 용인의제21 공동주관으로 ‘용인시계 대탐사단’을 발족해 같은 해 6월에는 광교산 정상에 용인시계표석 설치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각종 보도사진 자료 등을 활용해 2009년 11월에는 ‘사진으로 본 동백의 시간과 공간’ 용인문화유적전시관 개관 특별전 기획, 2012년 11월에는 ‘기흥의 어제와 오늘’에 이어 ‘사진으로 읽는 용인의 독립운동과 오늘’ 사진전을 주관했다.  

인구 100만 대도시 진입을 앞둔 2015년에는 ‘밀리언시티-용인의 길을 묻다’란 창간 16주년 특집합본호를 발행해 변해가는 용인시의 위상에 걸맞는 정체성을 확립할 것을 주문하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인구 증가, 교육에 눈 돌려 지켜왔습니다

용인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자 가장 관심사로 떠올린 것은 난개발이었다. 여기에 더해 부모들의 걱정보를 건드린 부분은 교육분야다. 특히 교육 인프라 부족으로 지역차가 심해질 뿐 아니라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을 공론화했다. 

이에 창간 1년 여만인 2001년 6월 용인시의회와 함께 용인지역고교 육성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는 지역 교육복지의 지역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후 용인시 교육계와 학부모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2014년 고교평준화 시행에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8월 21일에는 공·보육문제를 공론화됐다. 당시 관내 국공립어린이집 5개 가운데 4개가 폐쇄 위기를 맞고 있는 실상을 여과 없이 집중보도한데 이어 여성의 사회참여와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요구가 맞물려 지역 사회의 새로운 관심사로 대두된 것이다. 집중 보도 이후 용인시의회 여성의원들을 중심으로 보육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등 대안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용인시는 급격히 증가하는 인구를 담을 수 있는 공보육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20년간 <용인시민신문>은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8월에는 개교 6개월 만에 폐교되는 황당한 일을 보도했다. 당시 수지구 죽전택지지구 안 용인 청운초등학교(현 현암고등학교)가 수요예측 잘못으로 신입생 모집에 문제가 생겨 결국 폐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입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불편을 겪었다. 최근에는 도심학교 중 첫 폐교된 기흥구 기흥중학교 마지막 졸업 장면을 담는 등 여전히 도시팽창으로 생겨난 교육공백에 눈길을 끊지 않고 있다. 

건강사회, 늦추지 못할 과제를 함께 풀어 왔습니다

용인시민신문은 창간 이후 20년간 1000호의 신문제작을 하며 정치 문화 사회 경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싣기 위해 노력했다.

전국적 대도시로 성장한 용인시의 취약한 분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의료분야로 병원 시설 부족 등에 대한 지적을 이어왔다. 특히 2015년 전국을 불안감 속에 빠지게 한 메르스 사태 때는 용인 현황을 시민 알권리와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한 속보를 이어갔다. 이에 앞서 2002년 10월에는 당황스러운 일을 보도했다. 보건소가 폐기용 물 백신을 접종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본지 보도 이후 큰 파문을 일으켜 시의회 감사까지 받게 됐다. 당시 노인과 만성질환자 등 노약자 1800여명에게 투여해 보건소의 구태의연하고 무책임한 보건행정에 시민들이 분노한 사건이었다.

처인구를 중심으로 밀집된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에 대해서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용인시는 애초 도농복합시로 시작했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농업과 축산업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축산업계의 어려움과 수시로 발생하는 각종 전염병 상태를 수시로 전달했다. 이를 통해 지역경제의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시민들의 불안감과 안전‧동물복지에 관심과 대책을 세우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외 인구 100만 대도시에 용인시 의료 환경의 열악성을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특히 메르스 등 범국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전염병 발생 시 용인시의 의료시설은 매우 부족하다는 점도 신속히 보도했다. 

공동체 파괴, ‘난개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용인시는 곧 난개발이던 시절이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후유증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용인시민신문> 창간 시점은 용인시 난개발이 한창일 때와 맥을 같이했다. 이에 맞춰 2000년에는 수지와 분당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대지산이 죽전지구 택지개발로 인해 훼손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보도를 이었다. 이는 수지지역과 성남 분당지역 주민들이 환경단체와 공동으로 ‘1인 땅 한평사기 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개발 후유증인 부동산 시장 오염과 왜곡이다. 2004년 이 부분을 크게 다뤘다. 당시 전국적으로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려 용인에도 그 피해가 번졌다. 여기에 한발 더 들어가 용인시에 기획부동산이 기승을 부린다는 내용이 치밀한 취재과정을 거쳐 3회에 걸쳐 지면을 통해 기사화 됐다. 이후 검찰수사는 착수됐으며, 전국 각지 언론은 후속보도를 이었다.  

당시 보도를 통해 기획부동산 업체 대부분은 용인의 개발 계획이 발표된 곳을 기점으로 땅을 매매한 것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용인은 행정타운, 경전철 등 개발 이슈가 되는 요인들이 많아 투자자들이 현혹되기 쉬운 입지를 갖고 있어 토지거래를 꼼꼼히 살피는 등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차이나파라다이스 추진에 대한 지속적 비판기사로 용인시 추진 철회를 유도 했다. 이 사업은 2002년 말 시작해 중국북경홍과화한투자관리유한공사와 용인시가 공동으로 추진, 원삼면 일원 30만평에 사업비 3318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시민들의 반대와 중국 측의 투자결정 의사표시가 없어 협의가 종결됐다.

용인시가 대도시로 성장한 가운데도 여전히 난개발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이로 인한 주민 피해 역시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지금까지 난개발 감시와 주민들의 민원을 담기 위한 노력은 진행형이다.  
난개발은 용인시뿐 아니라 <용인시민신문>에 있어서도 지난 20년 동안 뜨거운 이슈였다. 실제 홈페이지를 통해 '개발'이란 검색어로 확인할 수 있는 기사는 8940건에 이른다. 이중 난개발로 폭을 좁혀도 1000개가 훌쩍 넘는다.

용인시 성장과 함께하며 공동체를 말했습니다 

‘공동체’는 <용인시민신문>에 있어 절대 빠질 수 없는 화두다. 지역신문의 소명이라는 소신의 발로인 셈이다. 이에 맞춰 2003년 ‘나누는 사회 따뜻한 용인’ 연중 캠페인을 진행, 같은해 11월에는 소년소녀 가장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용인시민 한마음 음악회’를 용인심포니오케스트라와 공동주최했다. 

2005년 1월에는 아시아지진피해 복구기금, 물품보내기 운동을 용인이주노동자 인권센터 등 시민단체와 공동 주최했다. 6월에는 당시 기흥읍 고매리 홀인원아파트 매화도서관에 1000여권을 기증했다. 기증된 책은 ‘책을 통한 시민연대-풀뿌리 독서문화운동 사업’ 1차 성과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12월에는 북한 민족화해협력위원회에 ‘따뜻한 한반도 운동’ 모금 협력물품 전달을 위해 북한 금강산에서 의향서 전달식을 갖기도 했다. 

2011년 1월에는 신년호를 통해 ‘2011년 재능기부운동’ 캠페인을 진행했다. 2012년 10월에는 <용인시민신문>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를 아름다운가게와 공동주관해 수익금 전액 장애인야학에 기증했다. 2004년부터 ‘사랑의 연탄 나눔운동’ 전개를 10여년간 한해도 빠짐없이 진행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따뜻한 동행, 상생공동체 용인’ 연중 기획을 ‘따뜻한 동행, 희망의 공동체’ 연중기획을 지면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2005년 9월 문화복지행정타운으로 시청을 옮겨 행정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 대한 걱정도 지면에 담았다. 행정타운 개청은 용인시민이란 공동체를 원활하게 이어가는 윤활유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12년부터는 원도심 공동화 현상에 따른 도시재쟁의 필요성을 꾸준히 재기했다. 이에 현재 용인시는 기흥구 신갈동을 비롯해 3곳을 대상지로 선정해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갔다. 

이외에도 미래 먹거리 산업을 제대로 챙겼는지 살폈다. 용인시가 제시한 다양한 미래 먹거리 산업은 무엇이며, 시민 실생활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지 다방면으로 관심을 가졌다. 도시팽창에 따른 부작용은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용인시는 여전히 차량 중심 행정을 펼쳐 안전한 도시를 위한 문제점과 대안 제시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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