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에 풍수지리 담아


유튜브 ‘노재화’ 채널 속 작가의 막힘없는 붓놀림에 국화 몇 송이가 금세 피어났다. 화폭 위에서 그의 붓은 춤을 추듯 움직인다. 그 모습에 넋을 놓고 보는 사이 그림 한 점이 완성됐다. 작가 노재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한 장면이다.     

20년 전 태교로 그림을 시작했다가 전업 작가가 된 노재화 작가는 그때도 지금도 그림을 ‘인생을 살아가는 힘’으로 여긴다.  “셋째 임신하고 둘째는 등에 업고 그림을 그렸어요. 정말 힘든 시기였는데 그림이 제게 큰 위로가 됐죠. 시작할 때 그렇게 시작해서인지 그림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노 작가의 말대로 그의 그림은 늘 따뜻하고 포근하다. 가장 최근작인 ‘동행, 더불어 가는 세상’도 그렇다. 가족인 듯한 4개 실루엣이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보며 걷는다. 딱히 큰 기술도 없고 정밀하게 사람의 표정을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그림이 주는 느낌은 분명 ‘따뜻함’이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관객을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노재화의 작품은 그렇게 온갖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쉬어갈 작은 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취미로 시작해 이제는 화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있는 노 작가다. 하지만 그에게 ‘노련함’은 큰 의미가 없다. 그는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처음 배웠던 그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 작가는 붓에 담긴 오만과 부담을 덜어내고 초심 그대로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림은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에요. 잘 그리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 그리는 거죠. 물론 그러면 대가가 될 수 없을 지도 몰라요. 대가가 중요할까요? 전 인생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행복을 위한 매우 좋은 도구가 돼 주고요.”

노재화 작가의 그림은 그의 설명과 딱 맞아 떨어진다. 노재화 작가의 세밀한 붓질은 기교가 아니다. 마치 화선지 위에서 춤을 추듯 빠르게 붓을 움직이면서도 노 작가의 입가는 미소가 머물러있다. 이 그림을 마주한 그 누가 슬픔에 빠질 수 있을까. 

붓에 힘을 빼고 그저 즐기듯 그림을 그리니 오히려 숨길 수 없는 천재성은 드러났다. 그의 그런 면모는 한국화 중 수묵 산수화에서 빛을 발한다. 

100호 사이즈 대작 ‘태초’는 세상의 시작 그 어느 지점의 풍경을 담았다. 그 어떤 인위적인 힘이 가하지 않은 무위자연 그대로를 명제로 그린 작품이다. 오로지 먹의 농담을 이용해 자연의 위대함을 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 작가는 가장 맑은 담묵부터 중묵, 짙은 농묵을 적재적소에 담아 이야기하고자 하는 태초의 신비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무겁고 탁한 먹은 힘을 뺀 붓의 담백한 움직임으로 생기를 얻고 풍부한 산천의 아름다움을 살려냈다. 그의 작품이 지루하지 않고 생생한 이유는 또 있다.   

“작품 안에 풍수를 넣어요. 물이 다 흘러내려 없어지지 않게 일부를 채워주고 고여 있으면 썩으니 나갈 길을 만들어 놓죠. 산, 하늘, 나무의 배치 하나하나 모두 섬세하게 배치해요. 점 하나를 찍어도 의미가 있죠.”

옛 문인들이 글쓰기에 지칠 즈음 남은 종이에 그린 그림이 문인화로 통칭됐다. 그들에게 그림은 쉬어갈 곳이면서도 글에 미처 담지 못한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니었을까. 노재화 작가의 그림을 그저 한국화라고 부르기보다 ‘문인화’로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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