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처인구 원삼면 일대 SK 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최종 심의를 통과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 용인시가 꿈에 부풀어 있다. 원삼면 일대 약 135만평 규모의 부지에 120조 원을 들여 4개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2028년까지 50개 이상 중소 협력업체가 동반 입주하는 대형 반도체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앞으로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용인시가 수도권 최대 자족도시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해당 지역 주민은 물론 용인시민이라면 누구든 이 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들떠 있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사안이 있다. 바로 용인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지역문화 보전 대책을 세워야 할 뿐만 아니라 도시형성의 기반이 되는 문화예술 진흥 로드맵을 지금부터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SK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좁게는 원삼ㆍ백암, 넓게는 처인구 전체가 문화 전 부문에 걸쳐 심한 변동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은 지역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해체, 외지 인구의 대량 유입, 전통적 농업 생산 기반의 변화와 도시화,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민들의 삶의 방식과 양태도 크게 달라져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지역문화 정체성도 쉽게 무너질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1980년대 후반 수도권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지 택지개발과 함께 수백 년 동안 지속돼 온 공동체 문화가 순식간에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당시 기록으로 남겨진 <수지읍지>를 보더라도 전통적인 마을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고, 오랜 전통을 유지해 왔던 마을 단위의 공동체 문화는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흔히 ‘마을이 하나 사라지면 박물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을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이 거주해 온 생활공간이자, 민속ㆍ의례ㆍ신앙 등 전통문화를 만들어온 문화의 공간이다. 따라서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전통적인 우리문화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마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시가 형성되고,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떠난다. 새로운 주민들이 유입되는 현상 속에서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마을 문화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SK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첨단 산업단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자.

첫 번째는 각 지역 단위, 즉 마을 단위의 전수조사와 함께 기록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 마을이 지니고 있는 인문지리 환경부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문화 속에 배어 있는 각종 의례나 세시풍속, 민속 등을 정밀 조사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두 번째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면서 운영해 왔던 마을 고유의 민속놀이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민속놀이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의 원리와 실천으로 기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통문화가 풍부하게 용해돼 있기 때문에 지역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세 번째는 민속박물관 건립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해 온 처인구 지역 주민들의 생활양식을 소개하고, 다양한 민속자료들을 전시함으로써 학술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후세들에게 지역 문화의 뿌리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지역문화 발굴 보전과 함께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 바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정책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다. 용인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신흥 도시들이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보여주는 일반적인 현상은 문화예술에 대한 고려는 아예 뒷전이고, 도시 인프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형식적 구색 맞추기 수준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원삼면을 중심으로 첨단 산업 단지가 들어서면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폭발적인 인구증가가 이뤄질 것이므로, 이를 예측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중장기 문화예술 진흥 프로젝트를 구상해야 한다. 도시계획 수립에 문화정책이 반영되는 것은 유럽 등 문화 선진국에서는 이미 필수가 된 지 오래다. 현재 용인시와 같은 독특한 상황에서 모범이 될 수 있는 도시문화정책의 모델을 제시한다면, 프랑스 드골 대통령 때 문화부장관이던 앙드레 말로가 법제화한 1% 시스템이다. 일정 규모의 대형 건물을 지을 때, 그 건축비의 1%를 들여 조각 등 미술품을 설치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이 전 세계로 퍼져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문화예술 정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즉 입주하는 기업들에 대해 그 규모에 따라 일정 부분 문화예술 투자를 제도화 하되, 그 내용은 중·장기 문화예술 진흥 프로젝트에 따른 정책 로드맵 범주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경제와 문화가 동반 성장하는 길이다. SK 하이닉스와 함께 문화 명품도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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