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소유주, 습지 흙으로 메워
“시 공원 조성 의지 보여달라”
용인환경정의와 동천마을네트워크 등이 고기(낙생)근린공원 공원화를 위한 주요 근거로 제시했던 수지구 고기동 습지가 11일 토지주에 의해 흙으로 메워졌다.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공원부지 내 토지주 일부가 재산권 행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용인시는 뒤늦은 행정으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공원 부지를 잃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고기동 12-12번지 낙생저수지에 위치한 300여평 무논습지는 용인환경정의가 2012년부터 동네습지 보전을 목적으로 모니터링 해오며 “생태적 가치가 높아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던 곳이다. 용인환경정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대모잠자리와 함께 두꺼비 등 각종 습지 생물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대모잠자리는 서식지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세계자연보정연맹(IUCN)의 적색목록인 위급(CR) 등급으로 평가하는 멸종위기종이다.
용인환경정의와 동천마을네트워크 등 주민들은 생태적인 가치가 높은 해당 습지를 주요 근거로 고기근린공원의 일몰과 민간공원특례사업을 반대해왔다.
그런데 이 습지가 11일 토지주에 의해 흙으로 메워졌다. 습지 보존을 원치 않았던 토지주가 최근 생태습지 조성 등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움직임이 잦아지자 강수를 둔 것이다.
습지 보존을 주장해왔던 주민 등과 토지주는 습지가 흙으로 메워지는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는 등 충돌을 빚었다. 경찰과 시 관계자까지 동원된 이후 양측의 격해진 감정은 진정됐지만 습지 흙 메우기 작업은 멈출 수 없었다. 개인 소유의 토지인데다 ‘농지’로 분류된 땅이라 토지 소유주가 “흙을 메워 논으로 활용하겠다”고 나선 이상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토지주는 “20년을 공원부지로 묶여 아무 개발도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던 땅”이라며 “내년이면 공원부지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는 희망만 갖고 기다려왔는데 얼마 전부터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생태습지로 보존해야 한다며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토지주는 또 “남의 땅에 자꾸 찾아와 뭔가를 하고 아이들을 데려와 관찰할 때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그냥 뒀다”면서 “생태적 가치가 높든 낮든 무슨 상관이냐. 내 땅인데 어떻게 쓰일 지를 주민들이 결정하고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주민들은 수년 간 다양한 생물들이 터전으로 삼아온 습지가 한순간에 파괴됐다며 눈물을 보이는 등 안타까워했다. 한 주민은 “습지 보존을 위해 주민들이 서명을 받고 용인시를 설득하는 등 공원 조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과정에서 이렇게 됐다”며 “시가 그동안 공원 조성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시 재정을 들여서라도 부지를 매입해 자연 그대로의 가치가 높은 이곳을 지켜달라”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한 주민은 “민간공원특례사업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면 낙생저수지는 무분별한 개발에 몸살을 앓게 될 것이 뻔하다”면서 “이 일을 계기로 시민과 용인시가 낙생저수지 공원조성에 대해 보다 강한 의지를 갖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