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마다 뉴스마다 폭염과 오존주의보! “노약자들은 한낮의 직사광선을 피하세요”라고 주의를 준다. 꼭 나보고 한소리는 아닌듯한데, 돌아보니 그 가운데 내가 서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차에 태우고 이리저리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환갑이 지나고나선 슬슬 눈치 봐가며 휴가로 모두 버리고 떠나버린 텅 빈 서울을 혼자서 음미하며 “사람들이 돌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가며, 창덕궁 비원, 덕수궁이나 사직공원까지 느리게 아주 느리게 한가한 서울 거리를 누비며 여름을 지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휴가철 서울의 거리가 더 많은 인파와 차들로 가득하기 시작해 나는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더할 나위 없이 폭염이 온다고 하니 기업가도 아니면서 구조 조정하듯 한여름 휴가 스케줄 조정을 하다 문득 떠오른 단어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용인 나의 집에서 십분만 걸어가면 경안천이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걷기가 불편해 아예 쳐다보지도 않던 길이였다. ‘궁측통’ 이라고, 그곳을 걸어보기로 했다

오후 4시경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를 챙기고 냇가에 설치해 놓은 체육시설에서 30분 정도 몸을 풀었다. 그리곤 ‘호반의 벤치’는 아니지만 강가에 설치된 예쁜 의자에 앉아 빵 한 조각을 “고시레~” 하고 던져주며, 간단한 저녁을 먹다 보니 발밑에 개미 한 마리가 빵 부스러기를 물고 가느라 낑낑대는 모습이 보인다. ‘이 더위에 쯧쯧~’

손톱 만한 개미에게 힘을 얻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지만, ‘그래 해보자’ 하고 작심하고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그것도 휴가 중 거의 매일 매일 이를 악물고 했다. 개미에게서 배운 끈기와 새로운 힘으로.

경안천에는 용인시에서 수질 정화 인공습지 시설을 해놓았다. 흐르는 하천수와 빗물 등의 오염된 물을 일정시간 동안 습지 안에 머무르다 흐르면, 습지 내 생물과 토양을 통과하면서 고인 물을 맑은 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지자체의 좋은 결과물이다.

강 위에는 천둥오리와 백로가 기막힌 장관을 이룬다. 풀숲을 디딜 때마다 수목들이 뿜어내는 향기는 숨이 막힐 듯하다. 곳곳에 자라나기 시작한 바이오 애기 갈대가 나붓거리고, 군데군데 “나 여기 있어요” 하며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노랑꽃창포와 고랭이와 부들들, 수련 그리고 보라색 꽃창포들이 손을 흔들며 반긴다.

가끔은 창피함도 잊은 듯 잔디 옆에 쪼그리고 앉아 네 잎 클로버도 따서 책갈피에 얌전히 넣어둔다. “한 잎은 믿음, 한 잎은 소망, 또 한 잎은 사랑이라, 남은 한 잎은 얻을 바 행운이니” 중얼거리며 잊혀만 가려는 행운을 가슴에 품어 보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만보를 걸으며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자전거를 타고 더위를 몰라라 씽씽 달리는 젊음들! 사나운 강아지 콧등 성할 날 없다더니 이마에 밴드를 부치고 마지못해 아버지 손에 끌려나온 다섯 살 남짓 사내아이의 표정이 너무 웃긴다.

둑 한편에서는 부지런한 노부부가 빨간 햇고추를 뒤집고 있다. 한번은 큰 챙 달린 모자 쓴 마스크 괴한이 선글라스까지 끼고 전쟁터라도 나갈듯한 자세로 뛰어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열사병에 걸릴 듯해 시선을 돌려 버리고 만다. 물이 찰랑찰랑한 징검다리에서 시원하게 얼굴 한번 씻어주고 싶다. 그 모습에 함께 나온 막내딸과 젠더도 꼬리를 치며 웃어댄다.

두 시간여 오가며 가끔 종이 쓰레기를 보게 된다. 대개는 깨끗한데 바람에 날려온 듯 싶다.

손이 근질근질 줍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시청에 전화해 쓰레기 줍는 청소년들에게 천 원씩 주라고 할까? 오지랖 주부 출신의 속내를 들킨 듯해 혼자 키득 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여름의 강렬한 햇빛이 곡식과 사람을 키우는가 보다. 나는 이번 여름 처음으로 여름이 주는 선물을 듬뿍 받은 듯하다. 이번 여름이 내게 준 그 장엄함에 스스로 놀라고, 도처에 비치는 흰빛들이 잠깐이지만 내 몸을 스쳐 지나가며 몸속의 모든 찌꺼기를 훑어 바람에 실어 멀리멀리 날려 버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 안에 큰 기쁨이 자리를 한다.

옛말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의 난로 겨울의 부채란 뜻이다

블랙아웃이 두려워 전기수급을 조절해야 하는 나라에는 더할 나위 없는 피서 방법인 듯하다. 어느 시인이 그랬다. “자기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새로 오는 노년이라는 새 계절을 설레며 바라본다”고. 나 또한 그 시인처럼 또 다른 계절을 설레며 기다리련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