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시리즈 선보여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겨내는 작업이 회화라면 이를 실존하는 사물의 형태로 재현하는 것이 바로 조각 분야다. 3차원 공간 속에 구체적인 물질로 형상화된 입체는 강하고 견고한 다양한 재료의 양감을 통해 특유의 매력을 지닌다. 하지만 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조각가 최정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한 사물을 원하는 두께로 절단해 이를 재배치 하는 방식의 작업을 주로 한다.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수많은 시행착오는 작가의 몫이다. 관람객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탄생한 작품 앞에서 그저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처음엔 바이올린처럼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골라 잘랐었죠. 이후 작품에는 지오메트릭(기하학)에 기본을 두고 단순화한 사물을 나름의 해석으로 분해하고 절단한 후 조금씩 움직임을 줘서 리듬감 있게 선을 만들어 냈어요. 말은 쉬운데 전체적인 조화를 살리면서 유연한 선을 살리는 과정은 복잡하고 힘이 듭니다.”

최 작가는 작품 하나가 나오기 까지 수많은 아이디어 스케치 작업을 거친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실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는 실패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기면 처음 의도와 다른 형태가 나온다. 최 작가는 스케치가 작품으로 완성되는 성공 확률이 10분의 1정도에 그칠 정도로 낮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가 2018년부터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 ‘합’은 ‘마음과 뜻을 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 시리즈 2, 최정태 작.

‘합’ 시리즈 전체 형태는 두 개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의지하듯 만나있다. 정확한 형태의 사각형들은 각자 있어야할 위치에 존재하고 그럼으로써 전체는 빛을 본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완벽한 ‘합’의 모습인 셈이다. ‘합’은 그래서 보는 이들에게 신비함과 더불어 뭔가를 이뤄낸 후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합 시리즈는 5mm 두께 스테인리스 정사각형을 1cm의 공간을 두고 1도씩 틀어서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사각형들은 세밀한 각도로 틀어져 리듬감 있게 배치되고 마치 공중에 떠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사각형을 연결하기 위해 얇은 봉을 이용하는데 조금의 오차도 없이 딱 맞는 규격일 때 움직이거나 틀어지지 않는다. 작품의 제목 그대로 ‘합’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데 서로 합을 이뤄낸 각각의 재료들은 멋진 조화를 이룬다.

“‘합’ 시리즈의 시초가 된 작품이 2014년 발표한 ‘우연’이라는 작품이에요. 무한대 기호 형태로 만든 작품인데 떡가래를 썰다가 우연찮게 나온 형태가 모티브가 됐어요.”

이후 ‘합’을 만들기 위해 무한한 시행착오가 있었던 걸 보면 작품 ‘우연’은 최 작가의 대표 연작의 복선이 아니었나 싶다.

‘합’ 시리즈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길이 60cm, 높이 30cm로 무게만 거구의 남성 몸무게와 맞먹는 80kg에 가깝다. 무거운 무게만큼이나 복잡한 작업 과정을 듣고 있자니 대체 왜 이런 어려운 작업을 이어가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들도 왜 작업을 그렇게 어렵게 하느냐 물어요. 요즘 개념미술이라 해서 보이는 형태 그대로 작업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런 작업 보다는 형태 속에 숨어 있는 복잡한 세계를 담고 싶어요. 우리는 기본 형태만 볼 수 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세계가 분명 있거든요.”

그가 찾는 세계는 깊이가 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찾아낸 그 깊이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최정태 작가의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14일부터 열리는 용인미협 정기전에서 새 ‘합’ 시리즈를 내놓을 예정이에요. 이번에는 원하는 느낌이 나올 거 같아요. 많은 시민들이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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