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변신 추구하는 70세 노년 작가

인물화부터 서예, 문인화, 한국화까지 화가 인생 40년차인 이정숙은 탄탄한 기본기로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해 다양한 변신을 추구하는 작가로 통한다. 올해 70세를 넘긴 노년 작가지만 먹과 붓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의 작품은 솔직하고 대담하다. 붓의 놀림에는 주저함이 없고 자유롭다. 수십 년 미술 인생을 겪으며 붓과 먹, 그의 생각이 혼연일체가 되는 궁극의 수준에 다다랐음이리라. 정해진 틀에 갇혀 있지 않다는 점은 이정숙 작가를 정의할 수 있는 특징이다. 사물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작가적 상상으로 떠올린 이미지를 지체 없이 화폭에 담는다. 그 자유로움은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 그만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적포도, 석류향, 매화, 능소화 모두 잎사귀 하나, 꽃과 열매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친다. 이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물화는 모든 그림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분야예요. 눈, 코, 입을 담은 얼굴부터, 머리카락, 몸체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 생동감을 담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거든요. 인물화로 미술을 시작한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모든 사물엔 생명력이 담겨야 한다는 사실을 그 때부터 깊이 깨달았죠.”

이 작가의 서예 작품은 그의 특징을 가장 잘 담고 있다. 글씨 마다 그림자가 비치 듯 먹이 번지게 하는 그만의 기법을 써서 입체감을 표현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기법에 관람객들은 숨죽이며 빠져들었다. 번짐 기법은 같은 작가들마저 방법에 대해 물어올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정숙 작가의 작품이 자유롭고 과감한 데는 남편의 역할도 컸다. 남편 김창규 작가는 이 작가가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사업가에서 화가로 변신했을 정도로 그의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해줬다. 이 작가의 전시가 열릴 때면 갤러리 예약부터 작품 진열까지 손수 돕는단다.

“여성 작가들은 특히 가정에서 지원해주지 않으면 작품 활동이 어려울 수 있어요. 근데 저는 오히려 남편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 줬어요. 생각해보면 남편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정숙 작가는 올 한 해 동안 전시가 끊이지 않고 열릴 정도로 바쁠 것이라고 했다. 1월 서울 인사동 라메르 전시에 이어 4월 용인미협 단체전, 8월에는 미국 뉴저지에서 10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한국화는 우리 고유의 전통 미술이잖아요.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10명 중 9명은 서양화가예요. 한국화가들이 설 자리가 그만큼 없다는 거죠. 한국화의 역사는 서양화보다 길어요. 사람들이 우리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제가 국내외 가리지 않고 일 년 내내 전시를 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