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러시아의 군의관 애니코프는 초식동물인 토끼에게 고기, 계란 등 많은 양의 콜레스테롤이 함유된 사료를 먹이기 시작했다. 한 토끼는 콜레스테롤을 해바라기씨유에 녹인 사료를, 다른 토끼에는 콜레스테롤이 없는 해바라기씨유를 먹였다. 70일 뒤 콜레스테롤을 먹은 토끼 대동맥이 딱딱해졌다.

현미경으로 살펴보자 혈관벽에 콜레스테롤이 굳어 있었다. 애니코프의 실험은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먹을 경우 동맥경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당연한 현상을 밝혀낸 것처럼 보였다. 유럽의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실험용 쥐에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줘도 동맥경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애니코프 연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1945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급사하면서 심혈관질환에 대한 연구 지원이 급증했고 의학 연구에도 고가 첨단장비를 활용할 기회가 생겼다.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초원심분리기로 콜레스테롤을 밀도에 따라 정밀하게 분석했고, 혈중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증가할수록 동맥경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애니코프의 연구 결과와 똑같은 결론이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애니코프 연구 검증이 실패한 이유는 실험 동물 때문이었다. 애니코프가 선택한 토끼는 혈중 콜레스테롤이 쉽게 상승하는 반면, 유럽 학자들이 사용했던 쥐는 혈중 콜레스테롤이 잘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음식과 상관없이 혈중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치료가 시도됐다.

초기에는 신진대사를 빠르게 해주는 호르몬이 활용됐다. 갑상선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기도 했으나 부작용 때문에 중단됐다. 수용성 비타민인 나이아신은 효과가 있었으나 혈관이 확장되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간지러움증이 발생했다. 석회질이 많은 미국에서 칼슘을 제거하기 위해 활용되던 물 연수기 성분을 이용해 체내에 흡수될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는 방법이 개발됐다. 효과는 좋았고 혈중 콜레스테롤이 떨어지자 정말 심혈관 질환도 감소했다. 그러나 이 약제는 맛이 안 좋고 변비 등의 부작용으로 장기간 사용하기 어려웠다.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물을 찾고 있던 중 프랑스에서 농약 사고가 발생했다.

농업에서 병해충을 예방하기 위한 살충제들이 개발돼 활용되고 있었다. 대규모 농장에 농약을 살포하기 위해서 비행기가 동원되기 시작했는데, 프랑스 남부 클레르몽페랑에서 비행기에서 쏟아진 농약에 많은 사람들이 노출된 사고가 발생했다. 농약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혈중 콜레스테롤이 아주 낮게 관찰됐다.

이 결과는 곧바로 농약 개발사에 알려졌고, 회사 연구진은 곧바로 농약 성분이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새로운 성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1954년 농약에서 발견된 성분 클로파이브레이트는 동물 실험에서 성공적으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췄다. 이제 인체에 부작용을 발생시키지 않는 적정 용량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수년간 임상실험을 거쳐 마침내 약품 개발에 성공했고, 1962년 아토르미드에스라는 상품명으로 시판됐다. 아토르미에스는 정말 심혈관 질환을 감소시켰다. 아토르미드에스의 개발이 성공하자 여러 제약회사들은 더 좋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우연히 개발된 이 성분이 어떻게 콜레스테롤을 낮추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정확한 약리 기전이 밝혀진 것은 약품이 개발된 지 30년이 지난 1990년대에서야 확인됐다. 아토르미드에스 이후 다양한 기전의 고지혈증 치료제가 개발됐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의약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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