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사골은 푹 고아서 끓이면 뿌연 육수와 함께 기름이 둥둥 뜬다. 곰탕이나 설렁탕 육수로 많이 사용하는 사골육수는 처음 끓일 경우 많이 발생하는 기름 성분을 제거하고 먹는다. 육수가 팔팔 끓었을 때는 투명한 기름띠를 제거하기 힘들지만 차게 식힐 경우 하얀색으로 딱딱하게 굳어져서 떠내기가 용이하다. 기름을 제거하는 이유는 많이 먹을 경우 높은 칼로리로 비만 등을 유발하며 심혈관 질환 발생률을 높인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지혈증이 심혈관 질환을 유발시킨다는 것이 알려진 때는 1960년대 이후다. 혈액 성분을 분석하기 이전에는 고지혈증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한의학에서는 고지혈증이 진행돼 두통, 어지러움, 중풍에 이른 뒤에야 진단이 가능했고, 내경에서는 고량진미, 즉 좋은 고기와 많은 음식을 섭취한 비만한 사람들에서 중풍 발생이 높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이후 동양의 여러 학자들은 기혈과 원기 손상 등으로 추정했고, 최근에는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한다는 어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원인보다 증상을 표현한 것이다.

기원전 수천 년 전 피라미드의 미이라에서도 동맥경화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었다. 심혈관 질환은 오랜 기간 사람들을 괴롭혀온 질환이었다. 콜레스테롤이 처음 발견된 것은 혈액이 아닌 담낭이었다. 담낭의 성분을 분석하던 프랑스의 화학자 폴레티어는 1758년 새로운 고체 성분을 발견하고 이를 주변 과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담낭에서 발견된 성분은 비누화가 잘 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이었으나 폴레티어는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고 다른 과학자들이 연구를 이어나갔다. 1815년 쉐브렐이 새로운 물질을 담낭에서 나온 고체라는 뜻의 ‘콜레스테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38년 혈액에서도 콜레스테롤이 발견되고 동맥이 딱딱하게 굳어진 혈관 속에서 콜레스테롤이 발견되면서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콜레스테롤의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1888년 오스트리아의 라이니처가 4개의 고리로 만든 콜레스테롤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라이니처는 콜레스테롤에 열을 가해서 녹여보자 처음에는 뿌연 색깔의 불투명한 액체로 변했다가 더 높은 온도에서 완전히 투명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온도에 따라서 색깔이 변하는 이유는 고체 결정이 완전하고 녹지 않아서 불균질하게 흩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는데, 콜레스테롤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물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됐다. 액체 결정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물질이 온도에 따라서 불투명해졌다가 투명해졌다 하는 현상은 과학자들 사이에 재미있는 연구 주제였으나 실제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이 연구 주제가 우리 사회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지난 1970년대였다.

1970년대 전자시계 광고

상온에서도 액체 결정의 성격을 가지는 물질이 발견됐고, 액체 결정에 전기를 흐르게 하자 투명한 물질이 불투명해지고, 불투명한 물질을 투명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성격을 가장 먼저 활용한 것은 일본의 시계 업체였다. 시계 업체들은 곧바로 액체 결정을 이용한 전자시계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액체 결정은 다양한 색소를 활용한 TV, 휴대폰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매일 보는 휴대폰 액정화면(LCD, Liquid Crystal Display)가 개발된 기본 원리가 콜레스테롤을 연구하면서 발견된 원리였다.

현대 의학의 발전은 단지 의학 자체의 발전뿐 아니라 현대 과학의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미경 등 과학기술의 개발이 의학에 영향을 주고 의학의 기본적인 연구 과정 역시 과학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대 의학이 하나만 동떨어져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함께 발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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