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나무

 

침엽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꽃이나 열매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대상이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보니, 숲과 들에 사는 나무 이야기도 주로 그 시절에 피는 꽃이나 열매가 달리는 나무로 소재를 택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겨울, 중부지방인 용인에선 꽃도 열매도 보기 힘들다. 아직 꽃소식은 들리지 않고 그저 꽃망울을 터트릴 순간을 기다리는 꽃눈만이 눈에 띌 뿐이다. 열매를 만난다 해도 지난 가을에 달린 열매가 마르고 딱딱해지고 색이 바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겨울엔 꽃과 열매가 없어도 멀리서 초록색으로 눈에 띄는 침엽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침엽수가 많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노간주나무,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비자나무, 분비나무, 측백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그리고 주목 등이 언뜻 떠오른다. 삼나무, 비자나무 같이 따듯한 지역을 좋아하는 나무도 있지만 대부분의 침엽수들은 추운 기후를 좋아한다. 그래서 설령 남쪽 지역에 산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서늘한 산 쪽에 분포해 높은 지역에 사는 것을 즐긴다.

높은 산 정상부근에 많이 모여 사는 나무 중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으로 유명한 주목이 있다. 정말로 이천년을 살아있는 듯 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오래 살고 죽어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자태로 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단단한 주목의 심재에 비결이 있다. 나무의 가장 속 부분을 심재라 부르는데, 주목은 이 심재가 아주 단단하고 치밀하다. 또한 그 색이 붉어 나무 이름도 붉은 나무란 뜻의 주목(朱木)이다. 그래서 목재로도 사랑을 받는데 주목으로 만든 바둑판을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구나 관을 만들 때도 사용했다고 한다. 워낙 더디 자라는 나무이다 보니 가구나 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중세유럽에서는 주목의 가지가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 활을 만들 때 사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붉은색을 만드는 염료로도 사용됐는데 임금님의 곤룡포를 만드는 색의 중요한 재료였다고 한다.

주목나무 열매

원래 추운 지방의 고산지대에 가야 볼 수 있는 나무였으나 지금은 조경용으로 많이 심어 공원이나 아파트 화단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됐다. 가지치기를 하며 모양을 내어도 잘 자라기에 둥근 세모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주목을 많이 볼 수 있다.

봄에 꽃이 피는데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모양으로 피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그래도 이 꽃이 지고 가을이 되면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데 앵두 같은 크기로 빨간 열매가 달리게 된다. 초록색 나무에 달린 빨간 열매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데 특이하게도 열매가 생기다 만 모양이다. 아랫부분은 뚫려있어 검은 씨앗이 밖으로 보인다. 빨간 껍질엔 단맛이 많아 아이들도, 새들도 좋아한다. 그런데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이러다 보니 주목은 식용보다 약용으로 더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주목에서 항암물질인 택솔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 가치가 더 커졌다.

예전에 예닐곱 살 되는 여자아이가 침엽수를 보며 해준 말이 있다. “겨울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나무가 산소를 만들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들이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단 소나무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 고맙지요?”

어린아이의 생각이니 굳이 지구적 차원의 대류현상이니, 공기의 순환이니 하는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이의 마음이 참으로 따듯했다. 겨울이 돼 다시금 그 아이의 말을 떠올리다 보니 한 가지 더 생각이 난다. 활엽수보다 오히려 침엽수가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사실.

“겨울에도 미세먼지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데 초록색 잎을 단 침엽수들이 있으니까 더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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