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고 차갑기만 한 돌에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의 손길을 거쳐야 했을까. 이경재·박민정 작가의 작품을 보고 드는 생각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다. 
조각가 부부로 유명한 이들의 작품은 ‘부부는 닮는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부정해버리고 만다.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고향의 추억, 가족의 사랑, 인간애를 표현하는 이경재 작가와는 달리 박민정 작가는 거칠고 대담한 선으로 인간, 풍경을 통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것 같은 두 작가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따뜻한 사랑,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역시 ‘부부는 닮는다’고 했던가.   

박민정 작가는 1998년 제 1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각과를 졸업한 그가 타국에서 마지막 열정을 담아 만들었던 작품을 ‘시험 삼아’ 공모했는데 덜컥 최고상을 차지했던 것이다. 당시 혜성같이 나타난 젊은 여성 조각가를 주요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취재할 만큼 그야말로 핫이슈를 몰고 왔다. 
박 작가에게 대상을 거머쥐게 한 ‘황혼 들녘에 서서’는 쉴 새 없는 삶을 살아온 노년 부부가 노을진 들녘을 평화롭고 평안하게 감상하는 모습을 담았다. 박 작가 작품답게 얼굴 표정 묘사가 전혀 없음에도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작품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한다.  

'풍경' 박민정 작, 2009

박민정 작가는 작품 초기에 면과 선의 절묘한 조율을 통해 인간과 모성애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면 이후 ‘풍경’ 연작에서는 자연석의 재질감을 그대로 살린 작품을 쏟아냈다. ‘풍경’ 연작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염소’는 박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모티브다. 낯선 곳에서 유학했던 박 작가의 여성 작가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신념이 담겨 있다.

“피렌체, 로마에서 보낸 청년 작가 시절 르네상스 시기 작품들을 보고 그 작품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들었어요. 심란한 마음에 피렌체에 있는 친구 집에 가는 완행열차에 탔는데 창 너머 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더라고요. 순간 ‘네가 되고 싶어’라고 생각했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욕심은 곧 작가의 열정, 신념 그리고 실력으로 표출됐다. 박민정 작가의 작품은 이제 애써 재료를 세밀하게 깎아 묘사하지 않아도 담고자 하는 감성을 그대로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박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변화하고 변신해왔다면 이경재 작가는 꾸준히 그만의 방식을 일관되게 고집해온 작가다.

이경재 작가의 작품은 단순하고 좌우 대칭을 이루며 정면성을 갖는 동서양의 고전적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동양 불상이나 서양 원시석상에서 봤을 법한 기법이다. 그러나 그 선은 분명 이 작가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윤곽이다. 절제와 대담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신비한 감성은 ‘이경재 기법’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어디서도 보지 못한 그만의 표현 방식임에 틀림없다.

“새롭고 창조적인 재료와 기법을 추구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었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만의 고유한 운율과 질서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죠.”

'오케스트라' 이경재 작

작달막한 키와 둥그스름한 얼굴, 수줍은 듯한 자세의 둥글둥글한 그의 작품이 나오기 위해 손가락 지문이 사라지고 피가 맺힐 정도로 수백만 번의 손길이 필요했다.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시간임에도 그렇게 나온 작품은 자신의 자식과 비견할 정도로 애정이 담긴단다.

작가의 애정이 담긴 작품이어서 일까. 그의 작품은 때론 엄마의 향기가 나고 때론 고향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단단한 대리석이 이처럼 따뜻한 인간의 감성을 표출할 수 있다는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2010년 발표돼 큰 반향을 불러온 작품 ‘오케스트라’는 이경재 기법이 그야말로 빛을 발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속 단원들은 숙련된 연주자로서 각자의 자리에 서있고 지휘자는 무게감 있게 그들을 응시한다. 이경재 작가만의 절제됐지만 조화롭고 균형 잡힌 묘사는 그들의 풍부한 하모니를 불러낸다. 재료의 중량감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 역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힘을 불어넣었다.

부부 조각가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경쟁하기도 한다는 이경재·박민정 부부는 앞으로 한국에서 부부 전시회를 갖는 게 소망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등지에서 부부 작품전을 한 적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한 번도 없었단다.

“조각가들은 사실 3D업종이라 불릴 만큼 매일 어려운 작업을 이어가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서로에게 힘이 돼 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의 작품전이 열리면 소식 전하겠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만큼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것도 ‘함께’이기 때문일까. 이경재·박민정 부부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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