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내리지 않던 비가 한꺼번에 내리고 있다. 비가 한번 올 때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얼마나 추워지려고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산책하면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느낌이다. 연두색 열매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걸려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무를 보면서 기대하던 열매를 달고 있으면 기쁘고 반갑다. 그런데 열매가 없는 나무를 보면 왜 그런지 너무 궁금하다. 은행나무처럼 암수딴그루일 수도 있고, 벌써 열매를 많이 떨어트린 경우도 있고, 해걸이를 하는 나무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경기도박물관을 산책했다. 박물관도 구경할 거리가 많지만 박물관 주변 산책로나 부지 내 조경이 잘돼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열매가 떨어진다. 벌써 많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다. 갈색 나뭇잎 같은 날개를 단 열매가 눈에 띈다. 피나무다. 

피나무는 크게 자라는 나무로 소나무숲이 아니면서 흙이 좋은 계곡부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나무껍질 섬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피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무껍질뿐 아니라 목재를 가공하기 쉽고, 목질이 좋아서 많이 쓰였다. 꽃은 6월에 피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그 풍성함이 보기 좋다. 아까시나무 꽃에서 꿀을 모으던 꿀벌들이 그 다음으로 목표를 삼을 만하다.

피나무는 꽃이 필 때 꽃줄기에 날개 모양의 부속체가 달려있다. 물론 이것은 꽃이 지고 열매를 맺은 지금도 달려있다. 피나무의 매우 독특한 특징이다. 그런데 이 부속체는 뭐지? 우연이라도 피나무의 이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궁금했을 것 같다. 지금도 필자는 이것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포(苞)’라고 부른다. 잎이 변형된 것으로 꽃이나 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포엽(苞葉)’이라고도 부른다. 잎이 변형된 것이기 때문에 잎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런 포가 있는 식물들이 꽤 많은데 하나의 꽃잎이 싸고 있는 듯 보이는 카라나 안스리움도 실은 잎이 변한 포가 꽃잎 형태로 붙어 있는 것이다. 필자가 피나무의 포를 날개 모양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포는 날개 역할은 하지 않는다. 비옥한 땅에서 크게 자라는 피나무는 작은 열매를 많이 만들어내지만 거의 나무 아래로 떨어진다. 그대로 썩어서 없어지면 아까울 정도로 그 양이 많다. 많은 열매들이 엄마나무가 살아 있는 동안 떨어진 그 자리에서 모두 싹을 틔우고 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부분은 다시 썩어서 엄마나무의 거름이 될 것이고, 일부는 새들이 먹을 것이고, 일부는 곤충이 옮길 것이니 얼마만큼의 씨앗이 어디까지 퍼질지 참 궁금하다. 동물에게 다는 위치추적장치를 이용해 수많은 씨앗이 퍼지는 과정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해 성숙하는 씨앗이 수천 개라도 씨앗 일부가 이동할 것이고, 그 중 일부가 싹을 틔울 것이고, 자리를 잡고 크게 자라날 나무는 극소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나무가 열매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것은 살아남을 자식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겠다. 지난 5월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10년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는 설악산 피나무였다. 가슴 높이의 둘레가 무려 11.13m 였다. 한라산과 울릉도의 나무가 그 뒤를 이었다. 많은 씨앗 중 대부분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극소수의 남은 나무들이 크게 잘 자라 인정받은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큰 나무들이 자라는 숲이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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