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천천히 밥과 술 들면서 사백열한 번째 가지는 모임 자축합시다. 건배합시다. 건배는 빠삐용으로 합시다. 모임에는 빠지지 말고 누구에게나 삐치지 말고 용서하라는 뜻이라 하오. 그럼 다같이 빠·삐·용하고 건배합시다” K회장의 인사 겸 건배사다. 

이 모임은 반세기전 익산에서 졸업 후 올라온 친구들, 월급쟁이 회사원, 자영업자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니 마흔 명이 넘어 교가 속의 미륵산 정기를 받들어 ‘미륵회’라 했으니 회장 말대로 사백열한 번째라니 제법 역사가 싸인 셈이다. 

“자 우리 모처럼 많이 모였으니 회장 말대로 사백이 넘으니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둡시다. 김제서 전주 더욱이 남쪽 끝인 부산서도 왔으니, 자 일어납시다” 하고 사진에 일가견을 가진 G형의 제안이다. 누군가 “사진 찍어 뭐해, 쭈글 쭈글 말라 비틀어진 꼴 사진 찍어 뭐 하게. 있는 것도 없앨 판에”

너나없이 늙어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면서도 정다운 얼굴을 보려고 모였다가 헤어지면서 사진 찍기가 아니고도 오가는 말이다. 오늘 모임에는 모처럼 열 한사람이나 나왔으니 사진 찍어 둠도 뜻있을 법하다. 

사실 우리 세대 꼰대들의 모임에 가보면 뒤풀이로 사진 찍자고 설치는 극성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일이다. 초청 받아 간 ○○○박사 고희문집 증정식에 참석한 동문들이 둥그렇게 서서 맥주잔을 들고 주고 받는 한담 속에서 ‘사진장이’란 말을 모처럼 듣게 되니 귀가 반가이 받아들인다.  

“○ 사장, 그래도 자네 얼굴은 영정사진으로 써도 아깝지 않을 거야, 우리네와 달리 탱글한 젊은 피부에 불그레한 혈색이며 머리도 희지 않으니 자네 같은 사람이 사진 찍기 싫어하면 우리네 같은 사진장이들은 어떻게 밥 먹고 사나”하는 듣기 힘든 말이었다. 

‘이제 사진 산업도 사양길에 들어섰다고들 한다. 쉽게 길거리에 나부끼던 DP점 간판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누가 흑백이나 칼라 필름 사서 사진 찍나, 필름 업계도 문 닫는 곳이 속출했으니 말이지. 스마트폰이 필름회사, 심지어 사진기 제작회사까지도 몽땅 삼킨 블랙홀이야. 사진기에 카메라 생산 업체도 스마트폰에 손 털고 나왔으니 카메라 옵스큐라의 시대는 멀리 멀리 사라졌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자랑은 아니나 사진 촬영 뒷이야기를 쓴 수필이 30년 전 어느 날 ‘사진기관지 편집장에게 픽업(?)돼 재밌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라는 회원들의 반응을 따라 5년간 연재하다보니 스스로 현역 사진가 못지않게 포토칼럼니스트로 대접을 받게 됐다. 세월이 많이 흘러갔지만 그 시절 사진인들을 만나면 “좋은, 재미있는 글 써주시던 칼럼니스트 최 선생 아니세요”하고 인사 받으면 쑥스럽기까지 했다.  

횟수가 늘어가면서 사진의 문외한이었기에 사진공부를 열심히 했다. 사진의 원리부터 역사, 사진술의 발달, 명암, 피사체 연구, 차마고도의 고행승 따라 사진 찍는 사진가들의 고행담, 피사체 값, 명작으로 남아 있는 사진 이야기, 물에 빠진 사진 이야기, 현상과 인화를 위한 약품들은 어느 회사 제품이 왜 좋은가, 우리나라 역대 왕과 사진 뒷이야기 등 사진 두 글자만 들어있으면 원로들을 찾아 자문을 받고 책도 열심히 읽고, 외국에서 나오는 사진 책에 여행 때 못 사면 주문까지 해서 읽어 칼럼을 썼다. 이른바 포토 마니아, 사진 미치광이가 되기도 했다.

원고료 봉투도 제법 두꺼워 책 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충실한 재충전이 있었기에 기관지가 보고 싶어진다는 회원도 많아 필칼럼으로 한때 호강을 누렸다, 알맹이 없는 칼럼을 쓰지 않아 장수를 한 것이니 파종 없이 소득 없음을 느껴 마감 날이 가까워오면 잔뜩 긴장하고 글을 썼다,

사진 무용론에서 많이 자가선전 쪽으로 왔으나 칼럼니스트 시절 협회 행사 때 초대 받으면 여기저기서 나도 모르게 스냅으로 찍어 보내줘서 지금은 눈두덩이 많이 꺼지고 얼굴이며 목 줄기며 보잘 것 없는 촌로지만 그때 사진을 보면 “나도 한때는 잘나가는 사나이였다. 나 죽으면 이 사진을 영정으로 쓰라”고 유언해 두고 싶다. 사진 다섯 장 가운데 고르라는 말이다.

물론 영정이라면 죽을 무렵의 사진이어야 한다고 말들 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한다. 웬만한 2,3세라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젊었을 때는 이러 했었노라고 보여주는 것도 훨씬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글쎄, 이래도 사진 무용론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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