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나무라고도 하는 ‘송악’을 용인에서 처음 본 것은 농촌테마파크에 지어놓은 초가집 담장에 걸쳐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돌담과 너무도 잘 어울려 ‘테마파크 관계자가 정말 장식을 잘 해놓았구나’ 생각을 했다. 숲에서 큰 나무에 붙어 자라는 담쟁이와 닮아있지만 줄기가 더 굵고 잎도 두꺼워 보이는 것이 마치 서양의 아이비와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검은색 포도마냥 달린 열매가 너무나 귀엽고 예뻐 보여 관심이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그렇게 자라는 덩굴나무로 우리나라 남쪽지방 해안가나 숲속에서 자생하는 송악이란 덩굴나무였다.

송악은 쉽게 말하면 한국의 아이비다. 원예식물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익숙한 아이비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많은 아이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 중 송악만이 자생한다. 겉모습으로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데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아이비와 같은 속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같이 자생하는 담쟁이는 포도과에 속하니 가족을 잘 구분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후 남쪽 바닷가에서 나무를 잔뜩 감고 올라간 송악은 눈에 쉽게 띄었다. 길이가 10m 이상 자라고 줄기에서 기근이라 하는 잔뿌리들이 나와 자라면서 나무나 바위에 붙어 올라간다. 잎은 어긋나는데, 어린 가지에 달린 잎은 3∼5개로 갈라지지만 늙은 나무 잎은 둥글거나 달걀 모양 또는 사각형이며 윤기가 나는 녹색이다. 어쩜 자연의 순리는 이리 비슷할까? 향나무도 어렸을 땐 뾰족한 바늘잎을 달고 있다가 나이 들면 부드러운 비늘잎을 단다고 하던데, 송악도 어린 가지에서 나오는 잎은 삐죽삐죽 갈라지다가 나이 든 가지 잎은 갈라지지 않고 하나의 모양으로 좀 더 둥글둥글해진다고 하니 참.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게 일맥상통이라.

4월에 달린 열매를 보고 참 부지런하다. 언제 이렇게 꽃을 피워 벌써 열매를 맺었을까 했더니 이미 꽃은 작년 가을 10월에 피었단다. 연두색 작은 꽃들이 우산처럼 많이 모여 피었다가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짙은 보라색으로 익게 된다. 열매는 참 재미있게 생겼다. 작은 포도나 머루같이 생겼는데, 옛날 유치원 동그란 모자를 쓴 듯, 꼭지 달린 뚜껑을 덮은 듯한 생김새를 가졌다.

그런데 송악은 담장나무 말고도 ‘소밥나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가 잘 먹어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진짜 소가 먹는 모습을 본 적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요즘 소는 자유롭게 이런 풀을 뜯어 먹지 않으니 앞으로도 확인할 방법이 없을 듯하다.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 입구 쪽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단히 오래된 송악이 있다. 길가 절벽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데 길이가 15m 정도로 퍼졌으며, 가슴 높이의 둘레가 80cm 정도 된다고 한다. 규모로 유명하고 역사로 대단하니 천연기념물이 될 만하다. 또한 충남의 지명 중에 아산시에 송악면이 있는데 땅 모양이 마치 송악 잎 모양과 닮아있다. 참 재밌는 발견으로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용인 숲에서 자생하는 송악을 보지는 못 했지만, 공원이나 학교 울타리에 심어놓은 것을 몇 번 봤는데 잘 자라고 있는 모습이 기특하다. 용인이 좀 추울 텐데 하다가도 요즘 날씨를 보면 걱정이 기우가 되는 슬픈 현실을 깨닫는다. 

식물들마다 사는 곳이 다르고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이 점점 자신 없어지고 있다. 남쪽 따듯한 지방에 살고 있는 식물이라 생각했던 나무들이 어느새 중부지방인 용인에서 볼 수 있게 됐다. 3월에 피는 꽃, 4월에, 5월에 피는 꽃이 다 달라서 봄에는 날마다 새로운 꽃을 보게 되는 풍요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차례가 없어지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꽃들의 향연이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많은 꽃을 한꺼번에 본다는 게 마냥 예쁘게만 보이지 않고 뒤죽박죽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봄 시간이 짧아지고 여름이 성급히 와버리니 꽃들도 우리도 당황스럽다. 이는 분명 자연스런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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