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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케어, 캐나다 의사파업과 합의(하)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미국조지메이슨대 초빙)
  • 승인 2018.04.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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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케어 시행에 반대하는 서스캐처원 의사들의 반대 시위(1962.7.11)

1962년 7월 11일 맑고 화창한 날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의 수도 레지나에는 수천 명의 의사와 시민들이 모였다. 캐나다 주정부의 무상의료 메디케어 반대 집회였다. 10일 넘게 지속된 의료계 파업은 많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정부의 실험적인 메디케어가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으려는 반대파와 투쟁의 장이 돼버리면서 캐나다 지방 중 하나였던 서스캐처원 상황은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 등 국제적 관심사가 됐다. 야당, 민간 의료보험회사, 반정부 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복잡한 상황이 돼버렸다. 의료계가 반대한 것은 정부가 의료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환자 치료를 방해해 국민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메디케어를 강행하려는 정부와 협상이 결렬되면서 1962년 7월 1일 마침내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 의사들은 파업을 감행했다.

7월 1일이 되자 입원 환자들을 위한 소수 의료진만 남아서 병원을 지켰다. 의사 대부분은 7월 여름휴가를 빨리 떠났다. 언론은 파업 소식으로 가득 찼다. 의료진이 없는 곳의 환자들은 응급진료가 가능한 인근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허구와 과장된 소문들이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일부 노조는 파업에 반대하고 약 30여명 친정부 의사들은 메디케어를 받아들였다. 의료계는 225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을 병원에 배치해 응급진료를 유지했다. 

첫 몇 시간동안 의사들의 행동은 아주 위험해 보였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부모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수십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간신히 병원을 발견했다. 파업한 2곳의 병원을 지나서 응급 진료를 하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나중에 치명적인 뇌수막염으로 파업과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당시 엄청난 충격과 사회적 파장이 발생했다. 언론은 의료계를 공격했고 의사 파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 불행한 ‘파업’이 시작된 날 두 가지 사실이 명백해졌다. 의료기관 의사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강경한 정부 정책에 경악하고 분노하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국민들은 상점이나 자동차 유리창에 자신들의 주장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족은 의사와 함께 한다” “메디케어를 연기하라” “혼란의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수천 명의 환자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러나 의사들은 지쳐갔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영국 의료진을 초빙해서 진료 현장에 투입했다. 병원에 따라 외국 의료진을 받아들이는 곳도 있었으나 많은 곳에서 거부했다. 낯선 환경에 영국 의사들이 금방 적응할 수는 없었으나 지친 응급의료팀의 빈틈을 메워줬다. 점점 더 많은 외국 의사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높은 임금을 요구했다. 친정부 단체들은 아예 자체적인 진료소 운영 계획을 세우고 12곳에서 의료기관을 설립하면서 갈등은 끝날 줄 몰랐다.

7월 11일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메디케어 반대 차량 시위가 수도 레지나에서 벌어지고 의료계는 메디케어를 일단 중지하고 재협상해 법 개정 후 시행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정부는 거부했다. 의료계의 반복되는 제안에도 정부는 메디케어 강행을 고집했다. 의료계가 협상을 요구하고 있을 때 정부가 영국에서 초청한 테일러 박사가 도착했다. 테일러는 영국의 건강보험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의사이자 정치가였던 테일러는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자신을 중재자로 만들었다. 의료계와 정부는 서로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의료계는 메디케어가 환자 진료를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정부는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테일러의 중재로 마라톤 협상이 진행됐고 마침내 기적적으로 타협안이 나왔다. 7월 23일 메디케어를 유지하는 한편 진료를 방해하는 모든 규제를 제거하고, 비보험 진료를 인정해 환자로부터 비용을 직접 받는 것을 허용하는 합의문이 발표됐다. 23일간 지속되던 파업이 끝났고 의사들은 진료실로 돌아갔다. 메디케어는 다시 진행됐지만 예상대로 의료비는 급상승 했다. 정부는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방사선, 임상병리기계가 있는 병원만 메디케어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대부분 작은 의원은 설비가 없었고 대형병원은 인력이 부족했다. 얼마 후 진료비 지급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환자가 직접 지불하는 것과 달리 수많은 서류를 검토할 시간과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의료계는 불만이 쌓였고 갈등은 증가됐다. 결국 중앙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가면서 메디케어는 유지될 수 있었다. 

반복되는 갈등과 긴장으로 시민 불만도 증가했다. 1964년 사회주의 정부는 선거에서 패배하고 자유당이 집권하게 됐다. 자유당 정부도 이미 시행된 메디케어를 중지할 수 없었다. 사회주의 정부가 다시 집권하자 보험료를 인상하려고 시도했으나 환자와 의사 모두 싫어했다. 정부는 소규모 병원을 폐쇄 합병해 의료비를 줄일 생각을 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고 실제 11개 병원을 폐쇄했다. 이런 행동은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번 시작한 복지정책은 멈출 수 없었고 캐나다 전체로 확산됐다. 의료계는 파업과 협상을 반복하면서 정부의 진료간섭에 저항했다. 계속 증가하는 의료비용은 큰 문제가 됐고 캐나다에서 의료정책은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사회주의 의료제도는 캐나다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에서도 벌어졌다. 전쟁으로 경제가 어려워졌고 경영난에 빠진 의료기관에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의료보험제도가 추진되면서 비보험 진료를 금지하려는 정부와 더 좋은 치료를 계속하려는 의료계와 갈등과 충돌이 벌어졌고 유럽 곳곳에서 의사파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2000년 의약분업을 실시하면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비가 늘어나자 진료 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와 더 좋은 치료를 계속하려는 의료계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각종 간섭이 늘어났고 일부 병원을 폐업시키려는 시도가 추진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아졌다. 선진국들도 정부 개입으로 국민 건강을 지키려는 의사들과 충돌이 발생했고, 현실적인 타협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극단적 의료계 파업을 막기 위해서는 급진적 변화보다 합리적 의견을 수용해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의 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미국조지메이슨대 초빙)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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