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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지방분권시대, 이제 ‘국민’에서 ‘시민’으로
  • 정해동(용인시 도서관사업소장)
  • 승인 2018.03.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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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지방분권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현 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대로라면 한국 지방자치사의 가장 큰 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지방자치를 공부하고 체험하는 사람으로서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민의 시대’가 열릴 때 비로소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이를 밑거름으로 지방자치도 꽃피울 수 있다. 시민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일정한 행정구역에 거주하는 자치단체의 구성원을 의미하는 서울시민, 용인시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란 역사와 정치의 토양 속에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율과 권리, 책임이 부여된 인격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국민’이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통제의 대상이자 책임과 의무의 주체가 강조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 대 국민은 수직적 상하관계, 일체감, 종속적 개체가 중시되는 반면, 국가 대 시민은 수평적 평등관계, 자율성, 독립적 주체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서구 선진국에서의 ‘시민’은 19세기 이후 100여년 동안 귀족 또는 지배층과의 투쟁의 산물이었다. 이 때문에 ‘시민’의 개념이 보편화 돼 있고 국가적 재난과 전쟁과 같은 특수한 위기상황에서만 ‘국민’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시민권’, ‘영국과 프랑스 시민혁명’에서 보듯이 국민이기 이전에 이미 시민이었다. 시민은 개개인이 고유한 주권자로서 어느 국가의 구성원이든 정치적인 자율과 책임의 주체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으로서 국가는 선택할 수 있어도 시민은 태생적으로 고유의 권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송호근 교수는 <나는 시민인가>에서 ‘시민성’이란 시민 사이의 자제와 양보, 참여와 협력에서 발현하는 민주주의의 성장 호르몬, ‘시민권’이란 나를 위해 남을 존중할 의무, ‘시민사회’란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를 의미한다고 개념 짓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한일강제병탄으로 귀족 대 평민체계가 붕괴됐고 유럽과 같은 투쟁의 대상이 소멸됐다. 이후 식민지시대에서는 내선일체라는 이름 아래 국민만이 존재했고, 해방 이후부터 이승만 정권은 분단과 전쟁으로 시민의 토양을 만들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역시 산업화와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치 아래 국민국가주의만 지속됐다. 1980년대 이후 현대화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경쟁으로 중산층이 확대됐지만 시민으로서의 정신적 자산이 축적되지 못해 시민사회의 토양은 척박한 상태에 머물렀다.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운동이 전개됐지만 시민의 문화로 확산되지 못하고 정치화 돼 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시민은 국가에 충성하고 국익에 헌신하는 수직적 관계 속에 머물러 있어 이웃과 공동체를 배려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 소홀히 했다. 국가 성장과 안보라는 국가중심주의에서 시민성 기반이 부실해 시민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민주시민이자 주권자로서 민주교육을 제대로 체계적으로 받아보지 못했다. 국민정신교육, 반공중심의 통일교육을 받아 온 것도 시민정신을 형성하지 못한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결국 산업화와 민주화로 경제성장과 함께 정치제도는 바꾸었지만, 시민으로서 정신적 자본이 매우 취약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룩한 물질적 성장만큼 정신적 성장을 위해 시민신뢰가 핵심인 사회자본을 축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 역시 유럽에서는 귀족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지배세력과 투쟁의 산물이지 우리처럼 정치적인 목적으로 중앙으로부터 무늬만 주어진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유럽의 지방자치는 투쟁과 학습에 토대를 두고 있어 뿌리가 튼튼하다. 반면,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지방자치의 가치와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벌써 성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국가는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합의해 만든 권력체제로서 ‘자율적인 시민사회’, ‘독자적인 지방자치체제를 갖춘 지방정부’의 토대 위에 성립된 것이다. 선진국은 모두 지방자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활발히 논의 중인 자치분권 못지않게 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토양인 시민, 시민성,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진력해야하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경제는 시간 단축이 가능하지만 사회문화는 그리하기 쉽지 않다. 지방자치도 기득권을 놓으려는 중앙권력의 결단이 요구된다. 경쟁력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지방정부의 총체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지방자치 시민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으로 교양시민을 육성하고 이해와 양보, 배려와 책임의 시민사회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협업과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충족될 때 비로소 지방자치시대에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해동(용인시 도서관사업소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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