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달이 점점 차오르며 1년 중에 가장 크다는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있다. 정월대보름 하면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해먹고 부럼을 깨먹는 풍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내 더위 사가라”며 더위도 팔고 신나게 쥐불놀이도 했던 추억도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고 아직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지 않은 시기라 우리 조상님들은 정월 시기에 옹기종기 모여 여러 가지 풍속과 놀이를 즐겼다. 그 중에 이제는 하기 힘들어진 풍습이 있으니 바로 ‘아궁이에 불때기’이다.

옛날에 오곡밥을 하기 위해선 아궁이에 솥을 걸고 불을 때어 밥을 해야 했다. 평소에도 불을 땠겠지만 정월대보름 오곡밥을 위한 땔감에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바로 나무가 타며 내는 소리가 크고 요란해야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 나무를 쓰지 않고 소리가 좀 요란한 나무를 골라 사용했다고 한다. 바로 노간주나무이다. 지방에 따라 싸리나무나 들깻대, 콩대 따위를 때기도 했는데, 경험을 통해 큰 소리를 낸다고 이미 알고 있는 노간주나무를 일부러 골라 태우며 풍년을 기원하는 조상님들의 순박한 속셈이 보인다.

노간주나무는 또한 코뚜레나무로 유명한데 코뚜레는 소를 길들이기 위해 어느 정도 자란 소의 콧구멍 사이에 구멍을 내고 끼운 나무 고리를 말한다. 소가 자라면 점점 힘이 세지고 사람이 소를 부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른 손가락 굵기 정도의 노간주나무 가지를 잘라 끓는 물에 삶아서 나무 껍질을 벗기고 구부려 만들었다. 소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아프고 잔인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입장에서 보면 농사에 큰 힘이 되는 소를 부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어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지는 노간주나무의 특성을 알았기에 가능한 조상님들의 지혜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새총을 만들 때도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노간주나무는 겨울에도 뾰족하고 푸른 바늘잎을 달고 있는 상록침엽수로 햇빛을 좋아한다. 큰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덮고 있는 숲보다 바닥까지 햇빛이 풍부하게 비치고 숲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남쪽을 향하는 비탈진 산지에서 주로 보인다. 숲에서 만나는 노간주나무는 옆으로 퍼지기보다 위를 향해 자라기 때문에 날씬한 삼각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잎이 솔잎보다는 짧고 통통한데 잎의 한 면이 움푹 들어가 흰색 줄이 보인다. 잎 끝이 뾰족한 세모진 바늘모양으로 따갑게 느껴지며 세 잎씩 나뭇가지에 빙 돌려난다.

봄이 되면 많은 침엽수들처럼 작고 소박한 꽃이 피었다 지는데, 처음에는 작은 구슬모양의 초록색 열매가 달렸다가 해를 넘기고는 이듬해 가을이 돼 검푸른색으로 익는다. 동그란 열매는 세 부분으로 줄이 가 있고 흰 유액이 묻어있다. 새나 동물들에게 먹이가 되기도 하는데 따가운 잎 때문에 수월치 않은가보다. 겨울이 되어도 달려있고 봄이 와 쪼글쪼글해진 열매를 볼 때도 있다.

약재로서 이 열매는 ‘두송’이라고 부르는데 술을 담그기도 하고 약이나 기름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양주 진(Gin)의 향료와 그 밖에 여러 음식 향료로 쓰인다. 헝가리로 대표되는 북유럽 요리에서 주니퍼베리(Juniper Berry)라고 불리며 즐겨 활용되는 향신료로 고기요리, 생선요리, 케이크, 잼, 파이, 소스, 스튜 등에 넣는데 맛은 달콤하면서도 쌉쌀하며 약간의 얼얼한 맛이라고 한다. 노간주나무를 많이 봤으나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해 그 맛이 참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노간주나무는 숫자 3과 관련이 많다. 삼각형 모양으로 자라고, 3장의 잎이 돌려나며, 열매는 세 줄로 나뉘어져있다. 마침 올해 정월대보름달도 3월에 뜬다. 참 재밌다. 숲에서 노간주나무를 보면 더 반갑게 요란한 소리로 인사해야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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