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 국내외 호평

서양화가 김명식

- 1994년 제3회 한국미술작가상

- 2008년 월간 <미술세계> 작가상 수상

- 2014 장리석 미술상 수상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 전 부산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 <일본 수채화 여행> 저자

 

“화가 중의 화가”

2005년 한국과 미국 5개 도시를 순회하는 국제벨트전을 열 당시 서양화가 김명식에게 붙여졌던 수식어다. 그의 작품을 본 평론가들은 “단순하면서도 놀랍도록 정교한 터치로 많은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다” “그는 색채의 마술사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특유의 색상으로 마법을 펼친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그런 그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김 작가는 활동 초기 고향인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그리움을 그린 ‘고데기(고덕동 옛 이름) 연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도시개발로 옛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에 의지해 그려낸 작품들은 삭막해진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이어져 익숙해진 작업에 김 작가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1999년 동아대학교 회화과 교수 재직 당시였죠. 겨울방학 기간이었어요. 입학 시즌 바쁜 일정을 모두 마칠 즈음 뉴욕에서 눈에 띄는 전시가 열리더라고요. 한걸음에 짐을 싸서 갔어요. 약 한달 간 머물며 뉴욕 갤러리들은 거의 모두 찾아다녔죠.”

뉴욕은 세계 미술 작품이 모이는 곳이다. 앤디워홀, 재스퍼 존스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보며 작가로서 열망이 샘솟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김 작가는 방학 기간마다 뉴욕을 갔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뉴욕에 2004년 롱아일랜드대학 교환교수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닿았다. 그리고 그의 작품 일생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순간을 운명처럼 만난다.  

“어느 날 평소처럼 작업실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어요. 그런데 갑자기 창밖으로 보이는 집들이 사람 얼굴로 보였죠. 그 길로 화실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홀린 듯 쉬지 않고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탄생한 순간이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를 ‘고데기 연작’으로 풀어냈다면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 애정과 화합, 조화를 담았다. 수많은 인종이 생각과 이념은 다르지만 분열과 갈등을 넘어 서로 화합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흰색, 검정, 빨강, 노랑, 갈색 등의 집들은 피부색이 다른 인종을 상징한다. 집 모양과 배치도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다른 듯 비슷하고, 비슷한 듯 또 다르다. 김 작가의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각각 작품들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지만 각각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때로는 화려하고, 북적이지만, 때로는 적막하고, 평화롭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 김 작가의 능력은 가히 타고났다고 할 만 하다. 그의 터치는 단순하고 절제됐지만 매우 정교하다. 여기에 수십 년 축적된 뛰어난 색채 감각과 세련된 화면 구성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김명식 작가는 작품 활동에 있어 ‘고데기 연작’의 전기,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이어진 중기를 지나 이제 후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그는 2015년 동아대 교수에서 정년퇴임한 뒤 처인구 이동읍에 터를 잡았다. 아들 내외, 손주들과 함께 사는 그림 같은 집 앞마당에는 닭과 강아지, 새들은 물론 철되면 진한 향기가 작업실까지 풍겨오는 장미와 다양한 들꽃이 있다. 이후 그의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동식물, 푸르른 색감이 더해진 이유다.

용인 처인구 이동읍에 터를 잡은 이후 작가 김명식의 최근작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동식물, 푸르른 색감이 더해졌다.

 
올해와 내년, 그는 굵직한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3월 홍콩 유명 아시아 아트쇼 출품에 이어 나이 70살 된 김 작가의 작품사를 되돌아보는 고희전을 국내와 일본 등지에서 펼칠 예정이다.
바쁜 일정에도 김명식 작가는 용인 미술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명실공이 대도시 대열에 들어선 용인이지만 아직 시립미술관 하나 없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용인 시민들이 좀 더 쉽고 다양하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힘을 보태고 싶어요.”

남은 3분의 1 여생을 보낼 용인은 그에게 이미 고향이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그다. 작가 김명식이 ‘굴러들어온 복, 용인의 보물’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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