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5월 16일 미국 클리블랜드병원 화재. 유독가스로 123명이 사망하는 참사였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클리블랜드 중심가에 병원이 설립됐다. 1920년 지어진 콘크리트 벽돌 건물로 1층에 접수실이 있었고 2층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연결돼 진료와 각종 검사가 이뤄졌다. 2개의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고 철제 자동문에 나무로 내부 인테리어로 멋지게 장식하고 있었다. 지하 기계실에 보일러가 설치돼 파이프를 통해 난방이 이뤄졌고 철제 환기구가 설치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뛰어난 의료진과 좋은 설비를 갖춘 클리블랜드 병원에는 매일 수백 명의 환자가 진료 받고 있었다.

1929년 5월 15일 오전 9시 아침 일찍 출근한 병원 직원들은 지하실 필름 보관실 천장의 고압 증기 파이프에서 증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11시경 수리를 위한 전문가가 도착했을 때 필름 보관실은 연기로 가득찼다. 소방장비를 이용해서 불을 끄려고 했는데 얼마 뒤 작은 폭발이 발생했고 뒤이어 큰 폭발이 발생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엑스레이 필름이 고온에 노출돼 녹아내리면서 가스폭발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지하실에서 수리를 하던 사람들은 화재 발생을 알리고 소방서에 연락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많은 소방차량이 동원됐고 구조용 안전매트가 설치됐다. 불길이 잡힌 오후 1시경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견됐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앞에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환자, 방문객, 의료진 뿐 아니라 소방대원까지 포함해서 123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다. 그러나 화상이나 화염에 의한 사망자는 한명도 없었고 모두 유독가스로 인해서 사망했다. 병원 내부에는 아무런 손상도 없이 멀쩡했다. 엑스레이 필름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파이프라인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 병원으로 확산된 것이다.

화재 때 발생되는 유독가스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밝혀준 클리블랜드 화재 사건은 안전분야에 큰 영향을 줘 엑스레이 필름은 가스가 발생하지 않는 물질로 교체됐고 의료기관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의료기관에서 화재 예방 조치가 다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20년 뒤 1949년 성 안토니오 병원에서 비극이 다시 발생했다.

1949년 4월4일 미국 성안토니오병원 화재로 77명이 희생됐다

미국 중부 일리노어주의 100병상 규모의 성 안토니오 병원은 1873년 작은 의료기관에서 시작해서 지역 병원으로 발전한 병원이었다. 깨끗한 병원이었지만 오래된 건물이었다. 나무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1951년 재건축이 계획됐지만 항상 그렇듯이 비극은 1949년 4월에 발생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큰 불이 발생했고 오래된 건축물에는 방화시설이 없었다. 병원 내부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움직일 수 없는 노인, 부목을 하고 견인 치료 중인 정형외과 환자, 신생아실의 어린 아기와 의료진 등 116명이 화재 속에 갇혔다. 스프링클러, 화재경보 시스템, 방화문이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방차가 10분 이내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전체에 불길이 번졌다. 몇 명의 용감한 의사와 간호사들은 불길을 뚫고 환자들을 구해냈지만 순식간에 화재는 확산됐고 병원장을 포함한 7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의 주 정부는 지역 의료기관에 화재에 대비해 스프링클러, 방화문 설치를 지원했고 많은 의료기관들은 주 정부의 도움을 받아 재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화재가 발생했던 클리블랜드 병원은 폐업 위기에 처했지만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진료가 재개됐고 현재 2만5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큰 병원으로 성장했다. 완전히 부서진 성 안토니오 병원은 주민들의 성금과 주 정부의 지원으로 재건됐으며 완벽한 화재 방지 시스템을 갖춰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1월 26일 밀양의 종합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9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당하는 재난이 발생했다. 재난을 막을 수는 없지만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인을 분석해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개인 의원에도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병원에 없었던 것은 제도적 모순이다. 법적 규제도 중요하지만 병원들이 스프링클러, 방화문 등과 같은 안전 장비를 구비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안전 설비를 갖출 경우 보험료 및 세금 감면을 통해 더 이익이 되도록 유도했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방정부 차원에서라도 안전한 의료기관을 만들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스프링클러나 방화문과 같은 장비도 중요하지만 혼자 이동하기 힘든 환자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에도 많은 환자들을 구해낸 것은 소방대원, 의료진, 자발적인 시민들의 도움, 즉 사람의 손길이었다. 200여명의 입원환자가 있는 종합병원의 당직 인력이 10여명에 불과했던 것이 한국의 의료현실이다. 보장성 확대와 같이 보이는 양적인 것보다 안전하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내면적인 투자가 절실한 이유이다. 재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재해는 막을 수 있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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