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 도심 보행길은 때론 흉기”

보행 돕는 점자블록 불량 허다
공공기관 편의시설 개선돼야

한국시각장애인협회 용인시지회 이병호 회장이 점자블록에 의지해 길을 걷고 있다

“예쁘고 간결한 디자인 좋아하시죠? 중요한 걸 생략한 도시 디자인으로 저희는 생존 위협을 느낀다면 이해 가시겠어요?”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이 만들어진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 외에도 다양한 장치가 필요하다. 인도 위 점자블록, 횡단보도 음향신호기, 촉지도, 점자 안내 표시 등 편의시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생존과 생활을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수단들이다. 하지만 한국시각장애인협회 용인시지회 이병호 회장은 이러한 장치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불편을 겪거나 위협을 느끼는 경우, 심지어 다치고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에게 ‘시각장애인들이 이동을 할 때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용인지회는 민원이나 의견청취, 교육을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에요. 이 곳과 가장 가까워 자주 이용하는 송담대역 곳곳은 점자블록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거나 안내 표시가 잘못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인도나 횡단보도 양 끝 점을 알리는 원형 점자블록조차 없는 곳도 있습니다. 미관상 이유로 애초 생략했거나 유지보수가 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된 경우죠.” 

시각장애인의 보행편의를 위해 설치하는 점자블록은 직진을 뜻하는 유도용 선형 블록과 방향 전환, 주의할 지점을 알리는 감지용 원형 블록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생명선지만 길 곳곳에는 점자블록이 있다가 끊기거나 부서지고 닳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비나 눈이 많이 온 후에는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점자블록이 깨지고 울퉁불퉁해져 오히려 시각장애인 이동을 방해해요. 일부 점자블록은 갑자기 중간에 끊기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서울 지하철역에서 끊겨진 점자블록을 찾다가 선로 쪽으로 떨어진 시각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죠. 용인에서도 관련 민원을 많이 듣지만 그때뿐 시정되지 않아요. 예산이 없다고 하는데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인도와 차도 사이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 진입을 막는 볼라드는 ‘도로 위 암초’라고 불릴 정도로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두려운 존재다. 법적으로 정해진 간격과 크기, 재질이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불법 볼라드는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석재로 되어있거나 충격흡수재질이 다 벗겨져 있는 경우, 볼라드 위치를 알리는 점형 블록이 아예 설치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시각장애인들은 불법 볼라드에 부딪혀 넘어지거나 찰과상, 타박상을 입는다고 이병호 회장은 설명했다. 

이 회장은 장애인 편의시설을 장애 유형에 맞게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갖춰야 하지만 용인시 조례에는 이런 부분이 없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 근거가 부족하다보니 용인 내 공공기관은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한 부분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얼마 전 토론회 참석차 수지구청을 간 적이 있어요. 제가 가야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촉지도를 살펴보는데 이름이 거꾸로 돼 있거나 닳아서 만져지지 않더라고요. 계단 핸드레일에 써 있는 방향 점자 역시 엉망이었어요.” 

시민의 관심도 부탁했다. “점자블록 위에 불법주정차하거나 노점상을 차리는 경우도 있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없애달라고 요구하기도 해요. 비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 등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해주셨으면 해요. 우리 모두 같은 시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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