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0월도 지나고 곧 입동이다. 매 절기를 보내면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항상 감탄하고 감사한다. 자연이 때에 맞춰 변하는 것에도 신비함을 느낀다.

지난주 잘 가지 못하는 전라도에 지인 결혼식차 다녀왔다. 익숙한 풍경이 아닌 곳으로 여행하는 것은 평소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즐겁다. 넓은 농지 가운데에 수확을 기다리는 과실나무들이 눈에 자주 띈다. 감은 먹이로 안성맞춤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감나무에 감이 정말 실하다. 사과나무의 사과도 아직 따지 않고 감상중이다. 모과나무에도 초록색이던 열매가 어느새 노랗게 익어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런데 모과는 노란 열매가 검게 변할 때까지도 나무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 딱딱해서 생으로는 먹지 않기 때문이리라. 동물도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모과나무는 우리나라의 숲과 들에 있는 나무는 아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중국에서 가져다 지금까지도 주변에 많이 심는 나무이다. 꽃과 열매가 주변에 두고 보기에 좋았던 까닭이다. 이른 봄 연분홍빛 큼직한 꽃이 필 때, 가을 뜨거운 햇빛 아래 샛노란 모과가 익을 때, 해가 지날수록 커지고 뚜렷해지는 얼룩덜룩한 나무껍질을 볼 때, 모과나무의 독특함은 여실히 들어난다.

모과나무는 장미과 식물이다. 그래서 꽃은 꽃의 여왕인 장미와 비슷하게 생겼다. 배꽃 같이 예쁜 꽃이 피니 5월, 벚꽃이 지고 그 서운함을 달랠만하다. 하지만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성의 없이 가지에 푹 꽂혀있는 열매가 생긴 것도 곱지 않고, 더구나 너무 단단해서 생으로는 먹을 수도 없으니 과일이라 말하기도 애매했던가 보다. 하지만 열매가 익으면서 뿜어내는 그 향기는 기막히다. 어떻게 이런 냄새가 날 수 있을까?

필자의 어린 시절, 집에는 항상 모과열매가 있었다. 바구니에 담아 할머니 방 반닫이 위에 올려놓으면 참 좋았다. 열매 귀퉁이가 검은색으로 변해가도 향긋한 향기는 사라질 줄 몰랐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멋스런 일이 귀찮은지 어느 집을 가도 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다. 모과의 나무껍질도 굉장히 특이하다. 물론 모든 나무들의 껍질은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껍질이 가로로 갈라지거나 세로로 갈라지거나 거의 갈라지지 않거나, 사각형으로 떼어지거나 실 모양으로 벗겨지거나 얼룩덜룩하게 벗겨지거나 거의 벗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하얀색,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도 있다. 나무에 잎이 없더라도 나무 전체 모양과 나무껍질만으로 나무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과나무의 껍질은 카모플라주(위장을 위한 의복에 사용하는 패턴, 쉽게 군복무늬), 얼룩덜룩한 모양이다. 최근에 나무껍질이 벗겨진 부분의 색이 나무 안쪽 색처럼 연하고 벗겨진지 오래된 부분일수록 어두운 색을 띈다. 이런 특이한 껍질의 나무들이 몇 있다. 더 많은 나무가 있겠지만 필자는 소나무의 한 종류인 백송, 동백나무와 비슷한 노각나무, 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는 배롱나무가 생각난다. 동물은 온몸이 하나라고 느끼는데, 가끔 식물은 줄기, 잎, 꽃이 각각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느껴진다. 아마 시기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있다가 없어진다 해도 같은 몸은 같은 특징을 갖기 마련이다. 모과나무 향은 열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잎, 줄기 모두에서 나는 것이니 길을 가다가 모과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만져보라. 줄기를 만지기만 했는데도 그 향기가 손으로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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