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잎

봄에는 비가 한번 올 때마다 따뜻해지고, 가을엔 비가 한번 오고나면 무섭게 추워진다. 매일의 날씨는 날씨예보로 확인하지만, 주간날씨는 식물을 보면 알 수 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비질이 바빠졌다. 오전에 낙엽을 치우고 나면 점심때쯤 또 수북하게 떨어져있다. 저녁에도 치우시는 걸 봤는데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 대신 나뭇가지에는 점점 황량한 찬바람이 분다. 벚나무의 하얀 꽃이 만발했던 때가 눈에 선하다. 여름에 아이들이 까만 버찌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었다. 그런데 여름 어느 날부터 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들더니 지금은 붉은 색, 주황색, 노란색, 알록달록한 잎들이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후두두 떨어진다. 올 한해 잘 쓰고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니 아까울 것 없겠는데, 왠지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예쁘게 물든 나뭇잎, 동그란 구멍 뚫린 나뭇잎, 한 장씩 주워 다가 책갈피에 끼워둔다. 

단풍은 한자로 붉을 단(丹), 단풍나무 풍(楓)을 쓴다. 기후의 변화로 나뭇잎이 붉게 또는 누렇게 변하는 현상을 나타낸다. 지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단풍은 은행나무, 계수나무, 아까시나무, 대추나무, 마처럼 노랗게 물드는 식물들, 단풍나무, 중국단풍, 담쟁이덩굴, 복자기, 붉나무, 화살나무, 감나무, 마가목처럼 붉은 빛으로 물드는 식물들,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참나무들처럼 갈색으로 변하는 식물들이 있다.

공원을 물들이고 있는 벚나무

갈색으로 변하는 잎들은 전반적으로 우중충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갈참나무의 갈색으로 변한 잎은 멋진 가죽구두가 생각날 만큼 윤이 나고 고급스럽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진한 갈색이 갈참나무의 그것과 같다. 어쩜 ‘갈색이 참 멋진 나무’라는 뜻의 갈참나무가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 가장 다양한 색으로 단풍이 드는 나무는 아마도 벚나무일 것이다. 가능한 모든 단풍의 색을 보여준다. 그래서 단풍을 보는 재미도, 줍는 재미도 더 하다. 

단풍은 추운 곳에서 시작한다. 산 정상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오고,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점점 내려간다. 가을이 되면서 밤 길이가 길어지고, 태양빛의 세기가 감소하고, 기온이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식물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래서 잎자루 끝에 견고한 세포층을 형성하는데, 이러한 세포층은 영양분과 수분이 잎으로 공급되는 것을 막는다. 광합성(식물이 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은 조금씩 감소하고 함께 엽록소(광합성 색소)의 합성도 감소한다. 엽록소의 합성이 감소하면 식물의 녹색이 점차 사라지고 수명이 긴 노란색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들이 색깔을 나타내어 노란색의 단풍이 생기게 된다. 안토시아닌은 더 다양한 색을 만들고, 탄닌은 갈색을 나타낸다. 모두 처음부터 잎에 존재하던 색소들이지만 엽록소의 양이 많았던 여름에는 색소의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가을이 돼서야 눈에 띄는 것이다.

하루는 긴데 일주일, 한 달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여름은 긴데, 가을은 순간이다. 물론 기후변화로 봄, 가을이 짧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아쉬움이나 미련이 남아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10월 중순부터 말까지가 단풍 절정기이니 지금이 딱 그 시기이다. 어! 하는 사이 단풍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기 전에, 봄에 가보았던 용인8경 가실벚꽃길도, 가까이 수원 경희대의 벚나무 가로수 길도 가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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