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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와 처인성전투 민주주의 발자취로 재조명

신분제 타파와 평등 향한 염원
중앙선관위 커버스토리로 엮어

몽골의 제2차 고려 침략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처인성 전투와 김윤후 승장이 민주주의 실현 과정의 역사 현장과 인물로 재조명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승장 김윤후와 천민들의 신분제 타파를 위한 염원을 8월 4일자 ‘민주주의의 발자취를 찾아서’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선관위는 신분제 타파 커버스토리에서 대몽항쟁 승전지 처인성과 충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승장 김윤후와 천민들의 항전을 그렸다. 커버스토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승려 출신 김윤후는 천민들의 주거지였던 좁은 토성에서 천민들을 이끌고 살리타이와 몽골군을 무찔렀다.

이에 조정에서 상과 벼슬을 내리려 하자 김윤후는 “저는 살리타이를 죽일 때 활을 든 적도 없습니다. 어떻게 공이 없는데 상을 받겠습니까”라며 모든 공을 처인부곡의 천민들에게 돌렸다. 승려 김윤후의 이 한마디에 천민 집단 거주지였던 처인부곡은 처인현으로 승격되고, 면천한 천민들은 양민이 됐다.

처인성 전투에서 천민들이 보여준 에너지는 20년 후 충주성 전투에서도 나타났고, 그 곳에 승장 김윤후가 있었다. 노비들과 함께 충주성을 지키던 김윤후는 굶주리고 기진맥진한 노비들이 보는 앞에서 노비문서를 태운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은 오늘부로 양민이다. 이 성을 지킨 뒤 문하시중도 병마사도 될 수 있는 양민.”

신분의 굴레에서 해방된 사람들의 힘을 입어 끝내 대제국 몽골의 공격을 물리쳤다. 김윤후가 천민들에게 제공한 건 신분의 해방이면서 곧 그들이 싸워야 하는 이유였던 것이었다. 중앙선관위는 커버스토리 김윤후 편에서 이렇게 끝을 맺었다.

“스스로에게 드리운 불평등과 억압을 철폐하고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자유’라고 한다면 자유는 인류 역사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걸고 떨쳐 일어서게 만들 수 있었던 가장 이유였다”고. 그리고 “그 어떤 위협이나 공포보다도, 억압과 명령보다도 인간은 자유를 목전에 둘 때 가장 용감해지고, 그것을 위해 싸울 때 가장 존엄해진다”고 말이다.

용인시가 호국불교의 성지인 처인성과 승려 김윤후의 애민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처인성(處仁城)은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산 43번지에 위치해 있는 토성이다. 몽골의 2차 침공 당시 수주(水原)를 지나 중원경(청주)으로 가는 도중 몽골군이 처인성에 다다르자 승려 김윤후가 화살 한 대로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함으로써 몽골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웠다. 이에 처인성은 1977년 10월 경기도 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됐고, 1979년 12월 16일 처인성 대첩 기념비가 설치됐다.

함승태 기자  stham@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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