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죽나무에 매달려 있는 둥근 것은 열매가 아니라 때죽납작진딧물의 집이다.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그것이 인생의 방향전환을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생태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꽃을, 그리고 이렇게 나무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돼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향을 떠나 용인에 살게 돼 처음으로 가게 된 광교산에서 나무에 피어있는 꽃을 봤다. 당연히 산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에 꽃이 필 수도 있는 자연스러움이 갑자기 “아름다운 꽃이다”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봄이었다. 하얀 꽃이 가지를 타고 주렁주렁 달려 나와 머리위에서 펼쳐져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하얗게 눈부셨던 하늘을 잊지 못한다. 이것이 때죽나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무를 보지 못했다. 삶이 나무를 가렸고 용인을 떠나있었다. 다시 돌아온 어느 여름, 하얀 하늘대신 동그랗고 귀여운 열매로 가득한 하늘을 보게 됐다. 작은 요정들이 춤을 추고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때죽나무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 귀에 종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영어로 스노우벨(snow bell)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얀 꽃과 귀여운 열매라는 확실한 콘셉트가 있음에도 우리 조상님들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이름을 풀었다. 깜찍한 외모와 달리 열매에는 독성이 있어 과육을 찧어 냇가에 풀면 물고기들이 둥둥 떠올라 떼죽음을 당한다 해서 때죽나무라 불렀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정말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정도는 아니지만 마취상태처럼 마비를 일으켜 헤엄치지 못하고 둥둥 떠오르게 해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나무다.

때죽나무

소싯적에 아는 선배를 따라 냇가에 고기를 잡으러 간적이 있었다. 그때 선배는 ‘배터리’라는 것을 메고 물에 전기를 흐르게 해 물속의 고기들을 감전시켜 둥둥 떠오르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하고 무모하다. 그때 때죽나무를 알았더라면 그런 위험한 장난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한다.

혹자는 때죽나무의 짙은 껍질에 주목한다. 울퉁불퉁하지 않은 밋밋한 표면에 검은 회색의 수피를 목욕하듯 밀면 때가 죽죽 나올 것 같아서 때죽나무라 부른다는 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동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양이 마치 스님들이 여럿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스님을 낮춰 부르는 ‘중’이라는 말과 이들이 떼지어있다는 설정으로 떼중 떼중 하다가 때죽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다. 장난감 구슬처럼 생긴 동그란 열매가 마치 동자승 같다 할까.

때죽나무는 우리나라에 흔한 나무로 웬만한 산에 가면 다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와 친근한 나무란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연유는 딱히 사람들의 생활에 쓸모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때죽나무 열매는 기름을 얻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해 머릿기름으로도 사용하고 등잔불을 밝히는데도 사용했다지만 요즘은 더 편리하고 성능 좋은 대체품들의 발명으로 더 이상 찾지 않게 됐다. 그런 와중에 의외의 방향에서 때죽나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는 지인은 때죽나무로 연필을 만들기도 하고, 열쇠고리나 미니윷을 만들기도 한다. 때죽나무 껍질은 얇고 색이 진한 반면 속이 밝은 색이다. 그래서 조각칼로 섬세하게 조각하면 안팎의 대비로 아주 멋드러진 소품이 된다. 조각을 하거나 솟대 장식품을 만들기에 좋다.

모르는 사람들이 때죽나무를 보며 헷갈리는 지점이 하나있다. 마치 작은 바나나송이처럼 생긴 것이 달려있는 경우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열매인줄 안다. 그러나 까서 보면 깜짝 놀랍게도 진딧물들이 바글바글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때죽납작진딧물로 나무에 어떤 물질을 가하면 그 조직이 부풀어 바나나모양의 집을 만들고 그 안에 애벌레들이 산다. 살면서 안을 다 파먹고 7월 하순쯤 나와 밖에서 여름을 나고 다시 가을에 때죽나무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마 알을 낳고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러면 다음해에 바나나처럼 생긴 벌레집이 또 부풀어 오르고 거기서 깨어난 애벌레들이 다시 인생 순환의 바퀴를 돌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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