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 꽃

여름 휴가철 보통 어떤 피서지를 선택할까? ‘바다가 좋으냐, 산이 좋으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필자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묻는 어른들의 애꿎은 질문과도 같다. 운 좋게도 이번 여름휴가는 바다와 산을 모두 다녀왔다. 바다에선 한여름 순비기나무의 보랏빛 꽃무리를 볼 수 있어 즐겁고, 산에선 숲이 뿜어내는 푸르고, 신선한 기운에 행복하다. 숲에서 지금 한창 꽃다발을 높이 들고 서 있는 나무가 있다. 바로 붉나무이다.

이름은 붉은데 꽃은 안개꽃을 생각나게 하는 하얗고 신선한 아이보리색의 다발이다. 꽃은 크게 하나씩 피는 목련이나 장미꽃 같은 종류가 있고, 여러 개가 함께 무리지어 나는 종류가 있다. 무리지어 나는 종류의 모양은 매우 다양한데, 우산 꼬리 옥수수 고깔모양 등이 있다. 붉나무 꽃은 고깔모양에 가깝다. 0.5cm정도의 작은 꽃들이 모여 꽃다발을 만든다. 화려한 색은 아니지만 한그루의 나무에 큰 꽃다발이 여러 개 매달린 모습 자체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을만 하다.

우리나라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로 5m 이상 크게 자라지는 않는다. 가지가 복잡하게 뻗지 않고 차례를 지키며 정돈돼 난다. 가을에는 잎이 정말 예쁘게 붉어진다. 작은 잎들이 붙어있는 잎맥에는 날개가 있다. 흔하지 않은 형태라 한번 보면 잊지 못한다.

붉나무

붉나무는 오배자나무로 더 유명하다. 붉나무의 더 오래된 이름이기도 한 오배자나무의 ‘오배자’는 진딧물과의 오배자면충이 식물의 세포를 비정상적으로 부풀게 해서 사용하는 ‘벌레혹’이다. 그 모양이 울퉁불퉁한 산호초를 닮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꽃 같기도 하고 열매 같기도 해 신기하게 느낀다. 오배자는 우리나라 한방에서 약으로 사용하고, 여러 다른 나라로 수출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는 벌레혹은 아니다. 오히려 붉나무는 붉나무혹응애 피해를 본 잎을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잎 표면은 거칠게 튀어나와 그 모양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징그럽다.

벌레혹은 여러 식물들에서 관찰할 수 있다. 때죽나무에서 볼 수 있는 바나나모양의 벌레혹은 납작진딧물의 벌레혹이다. 개다래의 벌레혹도 쓰임이 다양해 많이 판매를 한다. 떡갈나무와  밤나무에도 매우 흔하다. 이런 벌레혹은 작은 벌레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기생’의 결과이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생겨나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사라졌고, 살아남은 것들은 자손을 남겼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함께 사는 것들끼리 관계를 맺었는데, 그 무수한 관계는 언제나 자손을 남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기생도 그런 관계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기생이라는 관계는 필자가 보기엔 그렇게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영양분을 가져가는 것이니 말이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참을 생각해봐도 서로에게 일방적인 관계는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기생하는 벌레들이 좋은 식물들을 선별해 남기고 나머지를 먹는다면 식물들도 좋고, 더 후에는 벌레들도 좋은 먹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오랫동안 그런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가 아직 알아내지 못했을 뿐, 자연에서 기생은 오랫동안 ‘자연의 속도’로 서로 잘사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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