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 우리 가족의 주소를 옮기는 것은 많이 어색하고 낯섭니다. 적응이라는 단어는 새 학년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낯섦을 머묾으로 바꿔준 곳이 제게는 장미도서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을 전학시키고 녹색어머니에 지원해 아이들 등·하교시키는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동네 엄마들을 만났고, 그러다보니 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던 시멘트 바닥의 장미도서관도 자연스럽게 만났습니다. 낯선 곳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은 미안함에 어떻게든 잘 적응하게 하려고 아파트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름표도 안 붙인 책들이 제 키보다 높이 쌓여 있던 넓디넓은 도서관 바닥에 주저앉아 책 한 권 한 권 꺼내 바코드를 붙이고 라벨을 붙였습니다, 그게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날마다 마실가듯 시멘트 바닥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서투른 솜씨로나마 개관 준비를 했고 마을 도서관 이름 공모전을 통해 ‘장미도서관’이라는 이름도 갖게 됐습니다. 그 장미도서관이라는 이름은 제가 이 동네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이유가 됐습니다.

처음 장미도서관에 발을 들인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였지만 여기에서 저는 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제 생에 처음으로 자원활동가라는 이름을 달았고 매일같이 ‘알쓸신잡’을 찍는 친구들도 만나게 됐습니다. 장미도서관은 참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띠동갑인 친구들과도 한 공간에 있지만 처음엔 ‘요즘 애들’이었던 그들도 곧 ‘우리’가 되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고, 늘 그대로이면서도 그대로가 아니라 내면에 한 겹 더 쌓아서 나오는 그녀들이 있어서 장미도서관은 여전히 흥미로운 곳입니다.

요즘은 장미도서관을 보면서 하나씩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던 처음처럼 그동안 하던 것을 다 뒤엎고 또다시 새로운 걸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쉬운 일도 아니고 어설프게 할 일도 아니지만 뭐라도 함께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방학이라 북적이는 장미도서관을 보면서 역시 도서관의 꽃은 이용자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도서관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시원한 곳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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