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읍내를 떠나 시내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교우관계에 적응하자 관심사는 먹을거리가 됐다. 그중에서도 도시락은 단연 내일을 기다리는 ‘의미’기도 했다.

부모님의 온기 따뜻한 도시락보다는 인심 넉넉한 학교 옆 분식집 아주머니가 가져다주신 그것이 더 익숙했다. 반찬통에는 기름진 소시지전과 양념이 잘 발라진 김치가 단골로 들어가 있었다. 언뜻 모든 도시락이 똑같아 보였지만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았다. 소시지 개수부터 밥 양까지. 지금에서 생각하면 놀랍도록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준 듯하다.

분식집 동문들은 그 도시락을 ‘스페셜 런치’로 규정, 경쟁을 시작했다. 경쟁자에 앞서기 위해서는 무조건 빨라야했다. 점심시간을 앞둔 4교시. 책상 밖으로 한쪽 발을 내미는 것은 승리를 위한 나름의 기술이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는 경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신호탄이었다. 도시락이 있는 수십 미터 거리를 매일 달려야 했다. 특별한 도시락을 손에 쥔 날은 흐뭇하다가도 그렇지 못한 날에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만 점심시간이 조금만 더 앞 당겨줬으면…”

25년이 훌쩍 넘었다. 시청으로 취재를 가보면 그때가 많이 생각난다. 취재 해당부서에 들어가면 일부 공무원들이 무리지어 나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해진 점심시간보다 10~20분가량 이르다. 이들은 여러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움직인다. 앞서 ‘지역경제 살리기 차원의 부서별 외식’을 하란 사내 방송이 나왔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나갈 필요까지야. 구청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문득 생각했다. “경치 좋은 자리는 차지할 수 있겠구나”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민원 업무를 하다보면 점심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민원인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때는 고사하고 순번을 정해 급한 식사를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출장이 잦은 공무원은 한 끼 해결도 업무의 연장인 듯 ‘혼밥’으로 해결했다는 소리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당장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인듯 ‘배달음식’을 이용한 흔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경기도 가평군은 새달부터 점심 시간대인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민원서류 발급 업무를 중단한단다. 전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이다. 급한 민원이 아니라면 공무원의 점심시간 보장은 시민들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극히(라고 말해두자) 일부 공무원의 ‘이른 점심식사행’은 문제 있어 보인다. 이른 점심시간이 조기 업무 시작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확인했다. 11시 40여분이 조금 넘어 식사에 나선 ‘A’부서. 12시 50분에 맞춰 2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았다. 11시 50여분에 나선 ‘B’부서 1시간 뒤 전화를 걸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고무줄 점심시간’에 걸려 헛걸음을 했다는 민원인의 원성 역시 흔하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밌는 계산을 한번 해볼까한다. 매일 점심시간을 10분만 앞당겨 보자. 용인시 공무원 2441명이 1년에 딱 한번 조기 점심시간행에 동참한다면, 24410분. 시간으로 계산하면 406시간. 법정 근로시간 일 9시간(휴게시간 포함)을 기준으로 하면 일년동안 한달 이상 사라진 셈이다.

먹는 것 가지고 너무 치졸해 보일 수 있다.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을 ‘침소봉대’ 할 필요가 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업무 차 먼저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지근에 식당가가 없어 이른 출발을 해야 한다는 한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4년여 동안 시청을 오가며 봐온 ‘이른 점심식사’ 행보는 업무에 쫓겨 급하지도, (부서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한 두 번의 특별한 외식은 아니었다. 대다수 동료 공무원의 ‘점심시간 업무’ 뒤로 만연화된 또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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