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기 시작하자마자 만개다. 계절마다 꽃은 계속해서 피고 지지만 봄만큼 그 감흥이 큰 계절도 없다. 차를 타고 외곽도로를 달리니 산은 이제 연둣빛 물이 오르고 있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과 산벚이 한창이다.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풍매화인 나무들도 축축 처진 꽃줄기를 내려트리고 있다. 그리고 봄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린다. 우리들도 추운 겨울이 지나 싱그러운 봄내음이 나는 봄바람을 기다린다. 봄바람은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참 큰 의미가 있다.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매실나무, 벚나무…. 꽃이 거의 똑같이 생겨서 구별하기 어려운 벚나무무리의 식물들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면 그때 ‘이 열매의 꽃 이었구나’하고 기억하면 그 꽃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나무들은 한번 피면 꽃이 나무 전체를 덮어 그 화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벌들이 그 화사한 꽃들에 모여든다. 꽃이 많으니 벌들도 많이 모여들고 그만큼 꽃가루받이가 빨라 꽃잎도 금새 떨어진다. 벚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양봉하는 꿀통에 벚꽃 꿀이 가득하다.

물론 조금씩 다른 꿀들이 섞이기도 하겠지만 보통 핑크빛 꿀이 된다. 아까시아꿀의 맑고 투명한 연노란색, 밤꿀의 짙은 갈색과는 또 구별되는 색이다. 향도 조금씩 다른데 양봉하시던 아버지 덕에 이런저런 꿀도 맛보았으니 필자는 참 운이 좋다. 요즘은 도심양봉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는 듯하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이뤄지고 있으니 도심양봉이야말로 사라져가는 꿀벌도 살리고 맛있는 꿀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일거양득이겠다.

벚나무무리의 나무들은 잎자루에 꿀이 나오는 구멍이 더 있다. ‘밀선’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개미들이 벚나무를 비롯한 이 나무들을 잘 오르내린다. 개미에게 방해받지 않고 열매를 맺기 위해 아깝지만 조금 내어주는 나무들의 지혜일 것이다.

벚꽃이 화사하게 눈처럼 내리는걸 보고 ‘보기에는 좋지만 일본 꽃이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지인을 보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게 있고 기후대를 공유하기 때문에 같은 식물들이 많이 있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왕벚나무도 그 자생지가 일본이냐 제주도냐 말이 많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와 남해가 자생지라고 말한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무라며 벚나무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진 않았으면 한다. 벚나무는 우리에게 벗(친구)같은 존재이니까. 봄이면 우리나라 전국에서 피어나는 벚꽃을 본지 얼마나 오래됐는가. 벚나무는 일본 나무도 우리나라 나무도 아닌 ‘자연’이다.

용인8경 중 제8경은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의 ‘가실벚꽃’이다. 호암미술관 앞 저수지와 그 곳을 둘러싸고 피는 벚꽃이 장관이다. 벚꽃시즌이 되면 벚꽃이 좋은 곳은 어디든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그래도 가까이 있는 가실벚꽃은 꼭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벚꽃을 즐기는 모습 또한 자연스런 자연의 모습이다. 벚꽃은 그 화사한 밝음 때문에 밤에 그 운치가 절정에 이른다. 밤에는 벌들도 활동하지 않으니 벌에 쏘일 염려도 없다. 한적한 밤 벚꽃구경은 우리 집 앞에서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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