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탄핵은 정말 큰 국가적 사건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임시정부 수반으로 있을 때 탄핵을 받은 것이 최초이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처음 듣는 일이어서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이 대통령이 행정수반이었을 때 내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미국과의 외교문제에만 너무 신경을 써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상했을지 몰라도, 지금 생각하면 이 대통령의 행동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통령은 하버드대 영문학 석사에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박사였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프린스턴 교수 시절 그의 논문 지도교수였으며, 이 대통령을 끔찍이 사랑했다고 하니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는데 그의 탄핵은 오히려 매우 다행이었다는 역발상 같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의 잘못으로 인한 탄핵은 박대통령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탄핵의 정당성 여부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즉 탄핵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상이한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서양 속담에 ‘흑과 백 사이에는 수많은 회색이 있다’는 말이 있다. 즉 세상 일에는 좋고 나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고 나쁨 사이에 수많은 단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박 대통령을 싫어하는 측에서는 당장 탄핵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 쪽 입장에서는 모든 사실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입장이 너무 팽팽해 상호 말을 걸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차분할 필요가 있다. 사안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하야 또는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먼저 주장하는 얘기는 박정희 대통령경제발전 시절의 어려웠던 일들, 서독 광부들의 애환, 장충체육관도 지을 수 없어 필리핀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뼈아픈 노력으로 이 나라를 세웠다는 말 등이다. 맞는 말이다. 5,60대가 넘는 사람들은 ‘월화수목금금금’하며 열심히 일했다. 토·일요일은 어쩌다 있는 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를 지금의 경제 부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다.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과 온 국민이 그렇게 힘들게 일군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것이 더 문제라면 문제이고, 그것에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주장은 빨갱이들의 준동에 국민들이 놀아났다는 주장이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왜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면 모두 빨갱이들의 장난에 놀아나는 우둔한 국민이라고 말하는가? 어쩌면 빨갱이들의 준동이 배후 세력의 일부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60%가 넘던 대통령 지지율이 4%로 떨어지게 할 수 없고, 백만 명 이상의 인파가 그렇게 오랫동안 모이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올바른 판단에 의해 행동한 국민들을 빨갱이의 선동에 놀아나는 바보들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에는 영·호남 편 가르기다. 다른 때 같으면 호남의 준동이라고 말했을 텐데 이번 사건에서 유일한 호남인은 아마 고 모씨 한명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고 모씨의 조작으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간단히 얘기하자. 가방을 디자인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내가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사건을 조작할 수 있을까? 상상도 안 되는 일이다.

다음으로는 손 모씨의 조작으로 인한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사가 힘이 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언론사도 사실이 아닌 것에 기반해 대통령을 탄핵시킬 사건을 터트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 7시간 행적은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이 무슨 성형시술을 받았는가는 더욱 중요하지 않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국가수반이 정당한 업무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느냐 따지는 것이 본질이다. 탄핵을 주장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의 사실이 있다. 국가는 절대 외침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 내부의 부패와 무능으로 무너진다. 공산당이 준동하는 것도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틈을 보여서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사태가 있었음에도 공산당의 준동 또는 불순세력의 조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과 너무나 동떨어진 생각이다. 큰 부패와 부정은 어떤 경우에도 힘없는 대중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는다.

큰 부정은 큰 부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필자는 이번 사건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후가 걱정이다. 대통령 탄핵이 지지부진하게 진척되고 그런 사이 국민들의 국론이 더욱 분열되고, 또 그 이후에는 왜 싸웠는지도 모르면서 나눠진 국민들 간 반목이 걱정된다. 동서와 남북의 분열, 세대 간 골에 또 하나의 골이 더 생길 것이 걱정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현명한 결정, 헌재의 지혜로운 결정, 그리고 무엇보다 현명한 국민들의 행동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