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근대인의 삶과 꿈’ 전시 마련
박수근·장우성·천경자·이인성 등 작품 전시

박수근 ‘소와 유동’

한국 근대기는 전통시대와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대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일 뿐 아니라 개항에 따른 외래문화의 전파로 급격한 변화를 겪은 시기다. 전통사회의 해체가 제국주의의 침략과 연달아 일어나면서 문호개방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이 시기의 미술가들은 근대기의 격랑 속에서 신문화의 일부로 도입된 서양미술의 개념을 우리의 시각으로 해석해 근대미술의 역사를 창조했다.

호암미술관의 상설전인 ‘한국근대미술-근대인의 삶과 꿈’은 근대인의 삶과 꿈이 담긴 회화와 조각 작품들로 ‘삶의 현장’, ‘작가의 아틀리에’, ‘가족’, ‘근대의 풍경’, ‘꿈과 이상의 세계’라는 5개 소주제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본격적인 현대미술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근대미술의 큰 줄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근대미술사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받는 작가가 바로 박수근이다.

그는 서민들의 소박하고 평범한 삶의 정경을 단순하고 집약된 선으로 표현하고, 회갈색 톤을 주조로 하는 화강암 같은 재질로 채색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은 근대기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한국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박수근의 전성기에 제작된 ‘소와 유동’은 그의 그림 중에서 보기 드문 대작으로, 화면을 크게 상하로 구분해 상반부에는 웅크려 앉은 소를, 하반부에는 소년들이 오순도순 모인 장면을 그려 토속적인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장우성 ‘화실’

장우성은 전통 문인화의 맥을 계승하면서 현대적인 어법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격조 높은 화풍을 구현한 작가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조에 필선을 살려 그린 ‘화실’은 장우성에게 화가로서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이전까지 한국화의 소재와 차별화되는 화실이라는 근대적 공간을 배경으로 작가 자신과 모델인 아내를 대담한 대각선 구도로 그렸다. 그림 속에서 무심하게 파이프를 문 화가는 근대적 지식인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단정하게 한복을 입은 부인은 책 읽는 신여성이자 작가의 뮤즈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연출하고 있다.

천경자는 전통적인 한국화의 소재와 기법을 넘어서는 섬세하고 화려한 색체로 작가의 환상적인 내면풍경을 소재로 삼아 독특한 예술 세계를 만들어 낸 작가다.

그의 대표작인 ‘환’은 결혼식 초상사진처럼 정면을 바라보고 선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들러리와 화동이 배치된 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면사포와 꽃다발이 두드러지는 서양식 결혼식을 묘사하고 있지만, 인물과 자연의 사실적인 재현보다 배경 하늘로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운 윤곽과 다채롭고 화사한 색조를 사용해 성혼의 축복과 환희를 표현하고 있다.

‘가을 어느 날’은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신동으로 각광받았던 이인성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대작이다. 가을날 들판의 한가한 풍경 속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반라의 여인과 붉고 노란 들판의 색조가 대비되면서 원시적인 생명력이 강렬하게 화면을 지배한다.

이런 토속적인 소재와 색감은 한국의 실제 풍경보다는 동양적인 시각에 따른 이국적 재해석에 가깝다. 자연과 하나가 된 인물을 낭만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로 그리고 있지만 향토의 삶을 순수한 원시 상태로 타자화해 묘사하는 시대적인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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