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에는 숫자가 붙는 경우도 많다. 면(面) 이름에 숫자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몇 개 면을 합쳐 하나로 만들면서 숫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이 생겼다. 처인구 이동면(二東面)이 대표적인데 상동촌면(上東村面)과 하동촌면(下東村面)을 합쳤다는 뜻이다. 남사면(南四面)은 남쪽 네 개 면이 합쳐서 생겼다. 외사면(外四面)과 내사면(內四面)도 있었는데 지금은 백암면과 양지면으로 옛 이름을 되찾았다.

갈비와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의 일동이나 이동도 같은 예에 속하는 지명이다. 어르신들이 가끔 하는 말 가운데 “산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와 같은 말이 있는데 함경도에 있는 삼수(三水)군을 가리킨다. 중강진 옆에 갑산군과 인접해 있는데 조선시대 유배지 가운데에서도 오지중의 오지였다.

동해안에 가면 오십천(五十川)이라는 하천 이름이 있다. 오십천은 강원 삼척에도, 영덕에도 있는데 하류에서 상류까지 오르려면 50번 가까이 건너야 한다고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후세에 가져다 붙인 것이고 본래는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샛내였다고 한다. 즉 샛내가 신내>쉰내가 돼 오십(五十)으로 한자 표기 됐던 것이다.

용인 지명의 속지명에도 숫자가 붙은 지명이 많다. 백암면 근창리에는 스믈네배미라는 이름의 논이, 이동면 묵리에는 열여섯바위가 있다. 화산리에는 닷되지기논과 두집매가 있다. 처인구 남동에는 한섬지기들이, 역북동에는 아흔배미가 있다.

스믈네배미는 작은 논이 스믈네개나 된다는 뜻인데 아흔배미도 같은 뜻을 가진다. 열여섯바위도 바위가 많이 솟아 있어 생긴 이름이다. 닷되지기는 쌀 닷되를 거두는 논이라는 뜻이다. 논에는 수확량과 관련된 이름이 많은데 한섬지기나 일곱말지기, 닷말지기 등 앞에 수량을 나타내는 숫자가 붙는다. 두 집매 역시 두 집만 있는 곳이란 뜻이다. 비슷한 말로 세집매도 있는데 두세 집밖에 없으니 마을이라고 하긴 뭣하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딴집이 두세 채 있는 경우 붙는 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 보면 근일이면 상산리, 지금의 백암면 옥산리에 삼현(三峴)이 있다. 세오개라는 한글 이름이 나란히 있는데 세오개는 세고개의 변음이다. 서울 아현동의 옛 지명이 애오개인데 ‘-오개’는 고개의 변음이다. 배오개라는 지명도 배고개가 변한 것이다.

그러나 숫자가 들어간 지명이 모두 숫자대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처인구 운학동 삼삼이(三三里)는 찬샘이가 변해서 된 것이고, 구석리(九石里)는 귀퉁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역북동에도 구성(九星)말이 있는데 이웃에 있는 군부대의 별이 합치면 아홉 개라는 풀이가 있다. 이른바 예언 지명이 되는 셈인데 역시 구석말에서 변한 지명이다. 남동 태성중·고등학교 앞의 구미도 마찬가지이다. 구미(九尾)로 쓰면 꼬리가 아홉 개나 되지만 사실은 곶의 반대이다. 안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붙은 이름인 것이다.

원삼면과 백암면 사이에 있는 구봉산(九峰山)은 둘레에 있는 봉우리가 아흔아홉 봉우리라고 한다. 예전에 무학대사가 서울로 정하려고 했는데 봉우리가 하나 부족한 아흔아홉 개밖에 되지 않아 서울이 되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구봉산은 <동국여지지>에 ‘병풍을 비껴 세운 것 같으며 꼭대기에 9뇌(腦)가 있어서 구봉산이 됐다(橫展如屛 上有九腦故名)’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뇌는 머리를 가리키는데 9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뜻이다.

숫자가 들어간 지명도 이전 지명처럼 뜻이 제대로 된 것도 있고 전혀 맞지 않는데도 숫자만 붙은 경우도 있다. 글자를 그대로 풀이하는 것 또한 여타 지명과 다르지 않으니 땅이름의 뿌리를 찾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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