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토(粉土)는 쌀을 쓿을 때 쓰는 희고 고운 흙을 가리킨다. 쌀을 쓿는다는 것은 절구나 방아에 찧어 곱게 깎아낸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연자방아나 디딜방아 또는 절구로 쌀을 찧었는데 마지막 과정에서 하얗고 고운 흙가루를 넣어 쌀이 덜 깎이고 희고 고운 빛이 나도록 했다고 한다. 이때 사용되는 흙을 분토라고 한다.

쌀을 찧는 과정에서 분토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웃 일본에서도 예전부터 사용돼온 방법인 듯하다. 1931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동경발로, ‘미맥(米麥)정백(精白)에 사용하는 분토(粉土) 인체에 유해’라는 기사가 보인다. 즉 쌀이나 보리를 찧을 때 아주 하얗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분토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기사이다. 기사는 이어 분토가 위암이나 방광결석, 신장병 등에 유해하므로 사용금지법안을 일본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는 것과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돼 국민건강상 이를 금지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당시는 식민지시대이니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법률이 적용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분토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분토고개나 분토골 같은 지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는 부누고개가, 옥산리와 이동면 묘봉리에 분투골이 있다. 원삼면 문촌리에도 분터골이 사암리와 이동면 화산리에도 분터골이 있다. 원삼면 학일리에는 분탁골, 상현동에는 분툿골이 있으며 풍덕천동에는 분숫골이 있다. 또 모현면 갈담리에도 분터고개(분두고개)가 있는데 갈월마을에서 왕곡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또 비슷한 지명으로 원삼면 두창리에 분잿말(粉村)이 있다.

닥나무가 많이 있어 닥촌이라고도, 분잿말이라고도 했는데 분촌은 분잿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읍지 등의 기록에도 분촌으로 쓰여 있다.
분터골, 분두골, 분토골은 모두 분토를 바탕으로 하는 이름들이다. 분토>분투>분두로 변화된 것인데 용인 내 마을마다 고루 분포하는 것을 보면 분토의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분투골이 하얗고 고운 흙만 있는 게 아니다. 황토나 다른 빛깔의 흙이라도 고운 흙이 나는 곳이면 분토가 붙은 지명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붉재가 변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즉 ‘붉-’에서 ‘ㄱ’이나 ‘ㄹ’이 떨어져나가고 ‘붇’이나 ‘붓’으로 바뀌고 다시 변해 분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붉은 빛이 나는 고개라는 설명과 일치되기 때문에 흰 분토가 없어도 맞는 지명유래가 된다.

분재는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분고개, 즉 분토재의 준말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로고개의 변음으로 보는 것이다. ‘분재’는 분+재로 나눠볼 수 있는데 분은 가루 분(粉)으로 표기했으니 가루(분토)가 있는 고개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가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마을 앞이나 뒤가 아닌 옆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가루의 원형은 가로이다. 가로고개가 가루고개로 바뀌고, 다시 앞의 가루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분(粉)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분촌의 우리말 이름인 분잿말은 ‘가로 넘어가는 고개 옆에 있는 마을’ 쯤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분촌마을은 동남향으로 열려 있고 마을 뒤에 야트막한 능선이 감싸고 있는데 가운데 작은 고개가 있다. 이러한 마을 입지를 생각하면 가로 넘어가는 뜻보다 분토가 나는 고개가 있어 생긴 이름으로 풀이하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벼를 찧어 쌀을 만들 때 분토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봐선 쌀 문화권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흘러 분토의 풍습은 사라지고 여기저기 지명으로만 남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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