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와 강촌은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에 딸린 마을로 보통 쟁견내와 강가말이라고 부른다. 한자로는 장계(長溪)와 강촌(康村)이라고 쓴다. <내고장 용인 지명지지> 편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마을 서쪽에 소류지가 하나 있는데 그 곳으로부터 청미천으로 들어가는 시냇가에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해서 장재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명칭은 본래 장계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고로(古老)들은 장계라고 호칭하고 있다고 돼 있다.

또 강촌은 본래 강가말이라고 했는데,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이 강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가말이라고 하던 것으로 한자로 표기할 때 강촌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먼저 장계의 경우 백암면 장평리의 장재(長在)마을과 일부 혼동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장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말 지명도 쟁견내가 일반적이고 간혹 장견내나 장계내가 있을 뿐이다. 장계내는 강가내에서 변한 이름으로 생각된다. 강가울이 장자울로 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강가내가 장자내>장견내>쟁견내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과 내가 중첩된 지명이 되는데 이와 같은 예 또한 없는 게 아니다. 

강촌은 강씨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하지만 강씨와 관련된 흔적은 없다. 강씨는 신천 강씨가 있는데 백암 일대에는 역사적 연고가 없다. 따라서 강씨가 터를 잡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강가말의 강가를 한자로 표기할 때 사람의 성씨인 강가(康哥)로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강변의 뜻으로 보았다면 강촌(江村)이 됐을 것이다.

1900년대 초반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나 1:50,000지도를 보면 모두 강촌(康村)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1894년에 간행된 <죽산부읍지>에는 강촌(江村)으로 나타난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하나는 한 마을에 강촌(康村)과 강촌(江村)의 두 가지 한자표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 강가말은 강씨들이 살고 있는 마을일 수도 있고, 강가에 있는 마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어떻게 듣고 적느냐에 따라 강촌(康村)이 되고 강촌(江村)도 되는 것이다.

강가말은 강촌(康村)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강씨들이 터를 잡은 마을이 됐던 것이고, 이 또한 글자풀이식 지명유래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강가말은 말 그대로 강가, 즉 강변(江邊)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마을에서 청미천이 다소 멀지만 이른바 사행천(蛇行川)으로 심하게 굽이쳐 흐르던 옛날의 물줄기는 마을에서 더 가까웠을 수도 있다. 이때 붙었던 마을 이름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청미천의 물줄기는 마을에서 멀어져 갔던 것이다. 강촌이 강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이 아니라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것은 바로 위에 있는 <죽산부읍지> 표기가 말해주고 있다.

장계와 강촌은 한자표기는 다르지만 마을이 시냇가에 있어서 생긴 이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쟁견내가 강가내에서 변화된 것으로 보는 데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땅이름은 우리말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반드시 문법적인 법칙만 따라서 변화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장계와 강촌이 물가에 있어 생긴 땅이름이고 이웃의 내수곡(內水谷)과 외수곡(外水谷) 또한 같은 계통의 이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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