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나무가 도장나무란다”
“어떻게 저 조그만 나무로 도장을 만들었어요?”
“응, 비록 작아 보이지만 나무가 강하고 튼튼해서 도장을 만들기 좋기 때문이란다.”
“그렇군요. 도장나무!”

그렇게 알게 됐단다. 도로 양옆에 키 작은 나무로 줄을 세워 심은 회양목 옆을 지날 때에 지인이 한 말이다. 학창시절 작은아버지로부터 도장나무 이야기를 들은 이야기를 했다. 회양목 가까이에 다가가서 보니 손톱처럼 생긴 푸른 잎이 도톰하게 달려 있다. 여름부터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변해 익기 시작한 암술대가 부엉이 모양으로 달려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른 봄에 회양목을 만나면 작고 노란 꽃도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회양목이 도장나무로 불리게 된 것은 다른 나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세포 구조를 갖고 있어서이다. 대부분 잎이 넓은 나무는 몸을 지탱해주는 크기가 작은 섬유세포가 빽빽이 들어 있고, 사이사이에는 물을 운반하는 커다란 물관세포가 자리하고 있다. 반면 회양목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물관과 섬유의 지름이 거의 같은 나무다. 물관의 지름이 0.02mm 정도로 한쪽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이테 전체에 걸쳐 고루 흩어져 있어서 나무질이 곱고 균일하기 때문에 도장으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구하기도 쉽고 가공하기도 쉬워서 글자를 새기기에 가장 좋은 품질의 나무인 것이다.

회양목이 사랑을 받아온 이유로 우리 선조들은 회양목이 재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고급 목재로 여겨 아껴오던 나무라는 기록이 <삼국사기> ‘거기’조에서 품계 사용 규정에 6두품과 5두품은 말안장에 회양목 목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간 관리 이상만 회양목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조선왕실에서는 점을 칠 때 회양목 가지를 사용한 기록도 있다. 관인이나 선비들의 낙관은 물론 호패를 만들었고 측량도구로 만들기도 했다. 이 시대에는 아예 회양목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었다고 하니 시대에 따라 나무의 변천사도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조선시대 나무와 관련해서 그 쓰임에 관심을 갖던 중 영화 ‘고산자’가 개봉해 관람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목판 제작에 피나무가 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양목은 워낙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도장이나 인쇄 활자를 새기기엔 좋지만 목조각에서 가장 사랑받는 재료는 피나무로 서양에서도 예술가에게 이상적인 재료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그 시대의 지도 제작에 열을 올리며 팔도를 누비고 다니면서 지리를 나무에 새긴 장인의 위대한 정신이 있기에 빛나는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선조들의 기술과 노력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온고지신’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쓰임으로 사랑받아온 도장나무 옆을 지날 때에 낮지만 큰 울림으로 “너희가 사는 세상은 참 크고 높은 것들이 많아. 나는 너희가 사는 빌딩과 도로 그리고 아파트로 가득한 회색숲에 초록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 매우 기뻐. 때때로 너희가 빠른 걸음으로 내 곁을 무심코 지나갈 때 한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으면 해. 다른 나무들이 고개를 높이 들어야만 볼 수 있다면 네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조금만 아래로 내려다보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줘” 하고 말하는 것이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수처작주 입처개진’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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