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필자는 유행어를 만들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사람들에게 생각해야 하는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감각적인 본능과 생각하는 이성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수십만 년 간의 진화과정에서 생존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본능적인 감각에 훨씬 더 민감하다. 그래서 주로 생존과 관련된 본능이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이성의 세계도 무의식 세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사람은 생각하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다는 의미다. 즉 느끼는 것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말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반면 생각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귀찮고 부담이 된다.

그런데 이런 힘든 생각을 줄여주는 편리한 사회제도가 있으니 바로 도덕과 표준이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길을 걸을 때는 우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표준이 바로 그것이다.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기준에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그만큼 도덕과 기준은 우리생활에 매우 중요하고, 사회가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는 주 원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작지만 이런 도덕과 표준에 해당되는 것 중 하나가 유행어다. 유행어를 따라하면 이 말을 해야 할까, 안해야 할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또한 남들이 쉽게 받아들여주니 유행어는 말 그대로 유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행어는 이익도 크지만 그만큼 폐해도 크다. 유행어를 만들 때 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우리사회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친 유행어를 꼽으라면 명품이라는 단어와 3D산업, 그리고 이지메(학교폭력)라고 생각한다. 그 유행어들이 얼마나 많은 과소비 풍조를 일으켰고, 산업의 중추인 2차 산업을 기피하게 만들었으며 학교폭력을 조장시켰는가? 지혜로운 매스컴이라면, 현명한 부모라면 사회적인 문제와 자식의 잘못을 알고도 어떤 때는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심각하게 발전할 수도 있었던 문제가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요즘 이런 나쁜 영향을 미치는 유행어에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이 있다.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즘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통과 고민, 그리고 핑계를 함께 볼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교까지 나왔는데 취직은 되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만 들리며 나이는 점점 들어가니 이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어떻게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인생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공평하지 않다. 다만 개인은 줄기찬 노력에 의해서 그 불공평을 극복해야 하고, 사회제도는 그 불공평의 정도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공평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고, 노력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나누어지게 하는 것이다. 노력의 정도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그것이야말로 불공평한 것이다. 그런 사회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구 소련의 붕괴가 이러한 실질적 평등이 아닌 명목적 평등을 취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상황을 보면 부의 세습과 이에 따른 양질의 교육세습, 일부 부모들의 자기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때문에 사회적 문제가 매우 커지는 것 같다. 즉 일부 젊은이들이 자기의 노력 정도는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이라고 핑계를 대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경제성장 저하와도 관계가 있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자리에 내가 뽑힐 수 있을 만큼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는가를.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을 말하는 젊은이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 금수저는 아닐지라도 은수저는 될지 모른다. 진짜 흙수저는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이유를 밖으로 돌리지 말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90% 이상은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젊기 때문에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금쪽같은 사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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